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6/22 (08:21) from 211.197.6.114' of 211.197.6.114' Article Number :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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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위원회를 열어서 기본소득 도입을 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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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위원회를 열어서 기본소득 도입을 결정하자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엘리트 관료주의의 실패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나라에서 엘리트 관료주의의 실패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꼽힐 것이다. 두 가지만 예로 들겠다. 우선, 그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논의가 시민사회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쏟아져 나오고, 여당과 야당들의 4·15 총선 공약으로 제시되고, 총선에서 압승한 집권 여당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촉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한사코 반대했다. 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해야 한다는 선별적 지원 방침을 고집하고 재정건전성 준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가 내세운 반대논거였다. 그는 기획재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플레임에 갇혀서 재난의 보편성에 제대로 대응하는 정치적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가 책임자로 있는 기획재정부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 채 소외되고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 다음, 그는 지난 4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을 추진한다고 선언하고 기획단에 구체적인 설계를 맡겼을 때 그 기획의 책임자로서 기껏 ‘디지털 뉴딜’을 들고 나왔다. 경제성장 인프라 구축에 정책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안목에만 의지하다보니, 한국 사회의 미래를 새롭게 구상하기 위한 사회적 협약에 바탕을 두고 ‘한국판 뉴딜’을 구상해야 한다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판 뉴딜’에서 사회적 뉴딜과 그린 뉴딜은 설 자리를 잃었다. 기획재정부의 옹졸한 엘리트 관료주의에 갇힌 ‘한국판 뉴딜’ 디자인에 대한 시민사회와 학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급기야 집권 여당 내부의 이견이 대두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2일 국무회의에서 환경부, 산업자원부, 중소기업벤처부, 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 장관에게 ‘그린뉴딜’에 관한 기획안을 제출할 것을 지시함으로써 사태를 봉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뉴딜’은 ‘한국판 뉴딜’ 설계에서 끝내 누락되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러한 잇따른 정책 실패는 기획재정부의 엘리트 관료주의 프레임에 매몰되어 있기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본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에 주로 기획재정부에서 예산과 정책 기획 분야를 섭렵하며 잔뼈가 굵은 관료이기에 그 프레임에 비판적 거리를 두고 성찰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프레임을 넘어서서 시민사회와 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오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 판단을 하고 있다. 조금 더 신랄하게 말한다면, 기본소득에 대해 오판하고 있다고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는 지난 6월 16일 미래경제문화포럼이 주최한 조찬모임에서 한 강연에서 전 국민에게 일정 수준의 현금을 똑같이 지급하자는 정치권의 기본소득 지급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가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기본소득을 일인당 월 30만원을 지급한다고 해도 200조 원의 재정을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상황이 그 재정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현재 180조 원에 달하는 복지체계를 그대로 둔 채 기본소득을 ‘더 얹을’ 상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그가 기본소득을 복지정책과 재정정책의 틀에서 사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그는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의 핵심을 이루는 소득분배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가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을 예로 들면서 그 이유가 ‘기존 복지체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형평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 국민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취약계층을 선별 지원하는 복지체제를 옹호하면서 기본소득을 ‘전 국민 빵 값’으로 노골적으로 폄하했다. 마치 기본소득이 취약계층을 위한 재원을 먹어치워 버리는 듯한 인상마저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필연적으로 기존 복지체제를 개편해야 하겠지만, 기존 복지체제 때문에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논의를 외면하거나 무작정 연기할 수는 없다. 기본소득 도입의 경제적 효과가 기존 복지체제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촉진시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논의를 당장 하면 되지, 그 논의를 나중에 하겠으니,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논의를 그때까지 유예하자는 것이 말이 되는가?

더구나 그가 기본소득을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연간 200조 원의 추가 재정 부담이 미래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전가된다고 말한 것은 기본소득 재정 마련에 대해 눈곱만큼도 진지하게 사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여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지 않고, 공유부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과세와 배당, 세금감면 혜택의 폐지와 누진세 강화, 부가가치세 상향 조정, 거래세 징수 정상화 등의 다양한 방편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데, 미래 세대가 부담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설사 기본소득 재원이 일시적으로 모자라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는 경우가 있다손 쳐도, 2018년 현재 GDP 규모가 1천 9백조 원에 달하고, 본원통화든, 협의통화든, 광의통화든 연 10% 가량 증가하는 나라 경제에서 그 정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가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기본소득 논의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기본소득 구상과 그것의 다양한 버전들에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신자유주의적인 선별적 복지와 재정건전성 이데올로기를 방패로 내세워 기본소득 도입 요구에 방어막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을 고수하다 보니 그는 위에서 말한 지난 6월 16일 미래경제문화포럼 조찬 강연에서 올 8월에 재정 증가 요구와 재원 마련 방안을 법적으로 서로 연계시키는 PAYGO 원칙을 골자로 해서 재정준칙을 제시하겠다고 쐐기를 박기까지 했다.

이로써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논의에서 또 다시 기획재정부의 엘리트 관료주의의 이데올로기에 포박당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라고나 할까?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확산 등 기술혁신에 따른 비약적인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소득 없는 사람들이 엄청난 규모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필수불가결한 경제정책으로 보지 못하는 저 편협한 인식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기본소득 재정 방안 마련에 관한 시민사회와 학계의 논의에서 축적된 엄청난 연구 성과를 외면하고, 기본소득에 관한 편견에 사로 잡혀 반대하기에 급급한 저 정책 당국의 태세를 어떻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결정을 공론화위원회에 맡기자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설계와 결정은 기획재정부의 엘리트 관료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공론화위원회를 조직하여 그 위원회에 맡기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나라 시민들에게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관해 공론화위원회를 조직하여 결정한 전례가 있다.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논의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기본소득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 관한 공론화위원회보다는 그 규모를 더 크게 해서 전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효과를 거두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 위원회는 5천 명 정도의 규모로 하고, 계급과 계층, 소득분위, 연령, 젠더 및 성적 정체성 등의 요소별 인구 비율에 따라 구성하도록 하자. 기획재정부의 엘리트 관료주의가 설정한 신자유주의 정책 프레임에서 자유로운 전문가들을 시민사회와 종교단체들과 정당들로부터 추천받아 가급적 많은 전문가들이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하도록 하자. 그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공론화위원회의 틀에서 기본소득 개념과 그 사회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효과, 기본소득을 위한 지속가능한 재정 구축 방안 등에 관해 함께 학습하고 토론하고 숙의해서 기본소득 도입 방안에 관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자. 그런 뒤에 국회가 그 결정에 대해 심의·의결하여 기본소득 제도에 관한 입법 절차를 밟도록 하자. 필자는 이것이 엘리트 관료주의의 판에 박힌 사유를 벗어나 숙의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국가 중대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난 4월 22일 “‘한국판 뉴딜’ 설계, 기재부보다 공론에!”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제17회 연재에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서 ‘한국판 뉴딜’에 관한 숙의와 결정을 맡기자고 제안한 바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판 뉴딜’은 그런 공론화 절차 없이 엘리트 관료주의의 틀에서 신속하게 설계되고 그 예산의 일부가 제3차 추경안에 반영되었다. 그렇게 추진되고 있는 ‘한국판 뉴딜’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중장기 구상으로서는 불충분하다. 그 결정적인 약점은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그 이행과정에 관한 사회적 협약을 아예 결여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렇게 급조된 ‘한국판 뉴딜’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판 뉴딜’의 핵심을 이루는 ‘디지털 뉴딜’은 특정 재벌에 최대의 수혜를 안겨 주도록 설계되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향후 5년간 5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지만, 단기 일자리를 제외하고 좋은 일자리를 과연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된다. ‘그린 뉴딜’을 울며 겨자 먹기로 끼워놓았는데 탄소배출 감축 목표가 아예 없으니, 그런 것도 ‘그린 뉴딜’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지적도 받고 있다. 노동권력과 자본권력의 제도적 균형에 바탕을 둔 사회적 뉴딜은 개념조차 설정되지 않았다는 강력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향후 5년간 수십 조 원의 엄청난 재정 수단이 투입되는 ‘한국판 뉴딜’이 그토록 부실하게 설계되고 집행되어서야 되겠는가?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논의는 결코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이 전 국민에게, 직업, 소득, 재산, 젠더, 연령 등에 대한 심사 없이 무조건, 개인별로, 공적인 손에 의해, 일정 금액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구상된 개념이니 이에 대한 결정은 전 국민의 의사를 물어서 결정하는 것이 옳다. 그 결정은 국민투표에 회부해서 내릴 수도 있으나,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이 충분한 토론과 숙의를 통하여 결정하는 것이 필요한 의제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전면적으로 도입한 바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고, 기본소득이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효과는 실로 심대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충분한 검토와 숙의가 필수불가결하다. 그래서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큰 규모의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충분히 토론하고 숙의해서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결정을 내리자는 것이다.

전 국민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본소득 개념과 정책 위상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그 도입에 반대한다고 나섰다. 엘리트 관료주의의 이데올로기와 프레임에 사로 잡혀 이제까지 보여준 수많은 정책 실패에 더하여 그는 슈퍼 장관이라는 직책을 갖고서 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적, 정치적 논의를 훼방하고 나섰다. 필자는 그가 더 이상 그 직책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엘리트 관료주의의 좁은 프레임을 넘어서서 기본소득에 관한 시민사회의 논의와 정치권의 논의를 수렴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문 대통령이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성찰하고 정치적 판단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 도입에 관해 적시에 제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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