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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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내부감독 없이는 재벌공화국을 해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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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내부감독 없이는 재벌공화국을 해체할 수 없다

강원돈 (길마루글방 지기/사회윤리와 민중신학)

지난 10여일 동안 우리나라 정·재계에서 중요한 두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모두 삼성그룹의 지배 가문에 속한 두 인사에 관련된 일들이다. 하나는 이재용 씨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에 관련된 두 가지 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삼성그룹 지배 체제(regime)의 정점에 서 있었던 이건희 씨의 사망이다. 이 두 사건은 이건희 씨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 권력을 그 아들 이재용 씨에게 이양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갖가지 추문들과 불법 행위 의혹들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 두 사건을 들여다보면, 최근 국회에 발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 상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등 공정경제 3법의 개정,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감사위원 선임에 관련된 상법 개정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절실한가를 인식할 수 있다.

고 이건희 씨가 남긴 빛과 그늘

고(故) 이건희 씨의 사망은 그의 경영 능력과 업적을 다채롭게 조명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가 삼성그룹에 포섭된 다양한 사업체들이 수행하는 사업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최고의 인재를 등용하여 일을 맡기는 안목이 훌륭했다는 찬미로부터, 그가 삼성그룹의 총수로 취임한 1987년 이래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까지 삼성브랜드를 세계 6위로 올려놓았고, 삼성그룹의 매출을 300배로 키웠으며, 삼성그룹이 한국 GDP의 23%(2012년 현재)를 이루게 했다는 찬양에 이르기까지 도하 신문과 언론 매체는 고인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 찼다.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지 않고 고인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보수 언론의 뭇매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마저 조성되었다.

집권 여당의 이낙연 대표가 고 이건희 씨에 대해 한마디 했다가 조선일보의 공격을 받은 것이 그 예이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하여 “고인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생각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정중하게 조의를 표했다. 그는 ‘신경영, 창조경영, 인재경영 등’ 고인이 고비마다 보여준 ‘혁신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고인이 던진 ‘빛’을 충분히 묘사한 뒤에 그는 “고인은 재벌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고,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지적했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집권당 대표의 이러한 지적마저도 보수 언론에는 고까웠던 것일까? 조선일보는 이낙연 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에 달린 댓글들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그의 코멘트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어떻게 보면, 이낙연 대표가 고 이건희 씨의 그림자와 그늘을 짚기 위해 사용한 표현은 젊잖기 짝이 없다. 그가 한 말은 너무 추상적인 낱말들로 납작하게 눌려 있어서 삼성그룹의 위세와 공작과 횡포와 탄압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한없이 밋밋하게 느껴질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숨진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2015년 10월 7일부터 2018년 7월 25일까지 1023일간 엄동과 혹서를 무릅쓰고 농성을 이어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에 모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직접 들어보라. 삼성전자의 작업환경과 독성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경영자가 제대로 검증하도록 해서 그 결과를 인정하고 이에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인데, 어째서 저토록 긴 농성이 필요한가? 2019년 6월 10일부터 2020년 5월 29일까지 장장 355일 동안 반 평도 안 되는 좁은 송수신 철탑에 올라가 지난 1990년대 초중반에 노조설립을 주도한 그 자신에게 자행된 삼성의 무자비한 탄압과 불법 해고에 항거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몇 차례 단식을 강행하며 농성한 김용희 씨의 자리에서 삼성그룹의 지배 체제를 바라보라. 국가가 제정한 법과 제도에 아무리 호소해도 삼성의 지배 체제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경험하고서 그는 날것의 몸뚱어리로 삼성그룹의 지배 체제가 갖는 악랄성을 온 천하에 드러내 보이지 않았는가?

이 두 가지 사례들은 삼성그룹의 지배 체제와 무노조 경영의 어두운 그늘을 밋밋하게 서술하지 않고 역동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끌어내는 무척 긴 사례 목록의 일부일 뿐이다. 삼성그룹의 지배 체제를 공고화하면서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1인에게 집중하고 세습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온갖 편법과 불법 의혹,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사건,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과 폭로로 드러난 천문학적인 비자금과 광범위한 뇌물 공여 의혹, 대통령 권력, 고위관료, 검찰, 법원, 금융당국, 국세청 등 행정, 사법, 금융감독의 요직을 중심으로 강고하게 구축된 삼성 카르텔을 둘러싼 추문들은 길고 긴 목록을 이룬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에 관련해서 서울고법이 2009년 8월 14일 파기환송심 판결에서 고 이건희 씨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업무상 배임의 죄를 물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자유형과 1,100억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고, 이 형벌이 상고 없이 확정된 뒤에 고 이건희 씨가 삼성전자 회장직을 내놓은 적이 있다는 것도 부언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고 이건희 씨의 통치와 경영을 놓고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말하거나 마치 빛이 그늘을 덮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가 진리일 것이다. 그늘이 드리운 부분이 너무 넓어서 빛이 드러난 부분이 도리어 흐려졌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하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삼성그룹이 엄청난 사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그 빛이 바래는 까닭은 지배구조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취약성과 거기서 비롯되는 정당성 결여의 그늘이 워낙 짙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을 구성하는 기업들의 지분 전체를 놓고 보면, 고 이건희 씨와 직계 가족들의 지분은 2017년 현재 1%에 미치지 못할 만큼 매우 적다. 그런데도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 세습’이 운위될 정도로 총수 일가의 권위주의적인 그룹 지배력은 강고하게 구축되었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세습’의 불투명성이 온갖 편법과 불법 의혹이 난무하게 된 근본 원인이다. 이로 인해, 조금 뒤에 설명하겠지만, 고 이건희 씨의 그룹 경영권을 ‘세습’하는 당사자인 이재용 씨가 결국 법정에 서게 되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한 마디로 순환출자에 근거했다. 순환출자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상호출자이다. A 기업과 B 기업이 상호출자를 하면, 가공자본이 창출되어 두 기업의 출자금이 증가하는 동시에 한 기업을 지배하는 대주주가 다른 기업을 지배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룹 전체의 출자금이 10조 이상인 재벌의 경우, 이러한 상호출자는 2002년에 개정된 공정거래법 제9조에 의해 금지되었다. 순환출자는 A, B, C, D, E 등의 기업이 꼬리를 물고 출자하고, 계열의 마지막 기업이 계열의 첫 기업에 출자하여 계열사들의 순환고리를 완성하는 형태로 출자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순환고리에 속한 일부 기업이 다시 순환출자를 통하여 기업을 창설하거나 인수하여 이중 혹은 삼중의 순환고리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복잡한 순환출자를 통하여 모기업 역할을 하는 기업의 대주주 혹은 대주주 가문이 적은 지분을 갖고도 순환고리를 형성하는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의 재벌이 각기 다른 업종의 기업들을 끌어들여 사업 다각화를 추구하고 선단식 경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순환출자 고리는 계열사 한 곳이 부실해지면 전체 계열사에 그 위험이 전가되고, IMF 경제신탁을 전후로 해서 뼈저리게 경험했듯이, 재벌그룹 전체를 파산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는 계열사를 정리하여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기업 지배구조의 전환을 촉진해 왔다. 재벌그룹의 신규순환출자는 2013년 12월에 개정된 공정거래법 제9조 2항에 따라 2014년 7월부터 아예 금지되었다.

삼성그룹의 순환출자를 들여다보면, 총수의 지배권 확립의 발판 노릇을 했던 삼성에버랜드에서 시작된 대순환 고리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져 있었고, 그 안에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를 잇는 소순환 고리와 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삼성물산을 잇는 소순환 고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최근 삼성그룹은 모든 순환고리를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계열의 어느 한 부분에서 출자 관계를 끊은 것일 뿐 그룹 계열사의 복잡한 기존 출자 관계가 유지되거나 계열사 합병 등을 통하여 출자 관계가 일부 조정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세습’에서 불거진 문제들

삼성그룹의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세 가지이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 문제, 삼성데이터서비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문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문제가 그것이다.

▲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 문제

삼성그룹의 여러 계열사가 여러 겹의 순환출자에 의해 서로 엮여 있을 때,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치는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삼성에버랜드는 그룹 총수의 자식들에게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획득할 수 있도록 전환사채 발행과 인수 절차를 활용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이다. 1996년 10월 삼성에버랜드는 전환사채 125만 4천 주를 액면가 7,700원에 주주 배정 방식으로 발행했다. 그 규모는 삼성에버랜드 지분의 62.5%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고, 전환사채의 액면가는 삼성에버랜드 주식의 그 당시 평가액의 17분지 1내지 11분지 1 정도에 해당하는 헐값이었다. 삼성에버랜드 주주들이 전환사채 인수권 행사를 포기하자 그 전환사채는 고 이건희 씨의 아들과 세 딸에게 배정되었다. 이재용 씨는 절반의 전환사채를 인수하여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31.25%를 확보하였고 기왕의 지분율을 합하여 총 지분율 31.9%를 갖는 최대주주로 등극하였고, 세 딸은 각각 6분지 1의 전환사채를 인수하여 대주주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놓고 볼 때, 전환사채 배정은 총수 일가의 경영권 강화와 경영권 승계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고, 그것도 아주 적은 비용을 들여서 그 작업이 이루어졌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를 통한 경영권 승계 시도는 시민사회의 큰 공분을 샀다. 2000년 6월 법학교수 43인이 이건희 외 30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과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하여 이들은 검찰 수사를 받은 뒤에 재판에 회부되었다. 1심과 2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났지만, 2009년 5월 29일 최종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유죄와 무죄 의견이 5:5로 갈리는 가운데 양승태 대법원장의 의견에 따라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전환사채가 주주 배정 방식으로 발행되었기에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았고 따라서 업무상 배임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죄 판결의 가장 중요한 논거였다. 이 재판 결과를 놓고서 뒷말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대법관 가운데 삼성그룹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자가 무죄 판결을 이끄는 데 이바지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였다.

무죄 판결이 나오기는 했으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만일 삼성에버랜드나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을 소유한 법인 주주가 속한 기업 안에 이사회 감독기구가 독립적 지위를 갖고 이사회 결정을 감독하였다면, 법인이 이유 없이 전환사채 인수권 행사를 포기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삼성에버랜드 이사회가 실권된 전환사채를 총수의 자식들에게 특권적으로 배정하는 일을 허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은 실로 오랫동안 간과되었다.

▲ 삼성데이터서비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문제

이재용 씨의 자산을 늘려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를 도모하는 작업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이외에도 1999년 2월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을 통해서도 추진되었다. 이재용 씨는 이 사채를 헐값에 사들여 삼성그룹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SDS에서 향후 지분율 11.25%를 갖는 대주주의 지위에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의 내용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시중 가격보다 매우 낮게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액면가를 정한 것까지는 비슷한데, 그 사채를 주주 배정 방식으로 발행하지 않고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발행하여 사채 인수자에게는 엄청난 이익을 안기고, 사채 발행자인 기업에 큰 손실을 끼친 것이 다른 점이다. 따라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 대해 무죄를 판결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바로 같은 날 함께 다룬 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사건에 대해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하였으므로 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SDS 이사회의 결정을 감독하는 기구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기업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는 결정을 태연하게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서 불거진 문제

2014년 고 이건희 씨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이재용 씨가 총수역을 맡고 난 뒤에 삼성그룹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를 정비해서 이재용 씨의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일은 2015년 9월 1일에 일어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다. 이 합병에 등장하는 제일모직은 삼성에버랜드가 (구) 제일모직의 일부를 인수한 뒤에 사명을 바꾸어 사용하는 이름이다. 제일모직은 2014년 12월에 상장 기업이 되었다. 상장 첫날 제일모직의 주식은 11만 3천 원에 이르렀으니,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를 액면가 7,700원에 사들인 이재용 남매가 주식 액면 분할로 늘어난 주식 보유로 인하여 거둔 이익이 얼마나 엄청났겠는가? 그것도 어마어마한 사태이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것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인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보다 단순하게 정리되는 효과가 나타났고, 합병의 결과 탄생한 새로운 삼성물산이 고 이건희 씨가 대주주로 있는 삼성생명과 함께 삼성전자를 실효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합병 과정에서 결정적인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하나는 제일모직의 주식 가치와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를 1 : 0.35로 평가한 것은 과도하게 불공정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일모직의 종속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함으로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를 엄청나게 부풀려서 제일모직의 기업가치 평가를 책정하도록 이바지했는데, 그것은 회계부정이라는 것이다.

우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산정이 잘못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은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었다. 엘리엇은 소수 주주로 참여한 기업에서 지배구조의 허점을 파고들거나 기업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관철하여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주식 차익을 실현하는 행동주의 펀드들 가운데서도 가장 영민하고 강력한 펀드이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상태에서 기업합병을 하면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된다는 이유를 들어 합병에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삼성물산 주주총회의 합병결의 금지, 자사주 매각 금지 등의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법적인 행위에 나섰다. 법원은 기업가치 평가가 적법하게 이루어졌다고 판단하였고, 헤지펀드 엘리엇의 행동에 애국주의 캠페인의 맞불을 놓은 삼성물산 지배세력은 2015년 7월 17일에 열린 주주총회에서 69.3%의 찬성표를 끌어모아 가까스로 합병결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제일모직이 만장일치로 합병을 결의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로써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2015년 9월 1일 합병하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지주회사 격의 위상을 갖는 삼성물산이 탄생했다. 삼성물산의 지분 11.12%를 가지고 있었던 국민연금공단은 합병결의에 찬성표를 던져 국민연금에 큰 손실을 안겼는데, 그런 결정을 하도록 국민연금공단의 자산운영에 압력을 행사한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다음,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엄청나게 부풀리는 데 크게 이바지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 사건은 그 내용이 복잡하지만, 그 줄거리는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다.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 46%를 가지고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창설하고 그 지분 91.2%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종속회사이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는 연결재무제표에 장부가격으로 올라가 있었을 뿐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 회사 바이오젠과 합작 회사를 이루고 있고, 바이오젠에 50%-1주의 콜옵션을 부여한 상태였다. 만일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지위가 바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연결재무제표에서 떨어져 나가 기본 재무제표를 작성하게 되고, 자산가치를 장부가격이 아니라 시가로 평가해서 기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자산가치 재평가가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91.2%를 갖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는 엄청나게 커진다. 회계법인이 나서서 재평가한 결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가치는 2천9백억 원에서 4조 8천억 원대로 팽창하였다. 이러한 재평가가 적실한 것인가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아직 행사하지 않고 다만 콜옵션 행사가 임박했다고 예상되었을 뿐인데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결의를 앞두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서둘러서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능력을 상실하였다고 선언한 것이 합법적인가 하는 것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지위를 변경시킴으로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제일모직의 기업가치가 고평가되었고, 그만큼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의 합병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다고 사람들은 자적한다. 그것은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인 이재용 씨가 삼성그룹에서 지배권 행사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새로운 삼성물산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서도록 하려면 반드시 충족시켜야 할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사건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 사건은 오랜 검찰 수사 끝에 불법합병과 회계부정으로 규정되었다. 검찰은 이재용 씨 등을 기소하였고, 지난 10월 22일 서울지방법원 형사 25-2부에서 공판 준비기일이 열려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재용 씨가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공여하였다고 의심되는 사건에 대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심 재판도 지난 10월 2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시작되었다. 딱하게도, 이재용 씨는 삼성그룹의 지배권 확립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두 가지 재판을 동시에 받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전개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제일모직, (구)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유수한 기업 안에 이사회를 감독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가 있었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감사가 이사회 안에 있고, 대주주가 감사 선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감사의 독립성을 말할 여지가 있을 수 없고, 이사회 결정의 적절성과 적법성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될 리 만무하다. 이렇게 있으나 마나 한 감사 제도가 존립하는 한, 기업의 지배구조가 건전하게 확립될 수 없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구현될 수 없다. 삼성그룹이 경영권 확립과 승계를 둘러싸고 온갖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삼성이 대한민국에서 못 하는 일이 없다는 의미의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렸지만, 이 대목에서 진지하게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 내부에 이사회에서 독립된 감독기구가 시퍼렇게 살아있어서 이사회의 결정을 감독할 수 있을 때도 ‘삼성공화국’이 설 수 있겠는가?

감사위원 선임에 관한 상법 개정의 의의

최근 국회에 제출된 공정경제 3법은 재벌그룹을 규율하는 데 꼭 필요한 조항들을 담고 있다. 그동안 재벌그룹에서 경영권 승계자가 책임자로 있는 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는 관행을 철폐하고 규제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지 않은 대형 금융그룹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그룹감독법을 개정하는 것은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감사위원의 선임 방법을 변경하기 위한 상법 개정도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필자는 그 가운데서도 감사위원회 위원을 이사와 분리해서 선출하고, 감사위원 선임에 관련해서 최대주주의 의결권과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서 3%로 제한하는 상법 개정의 의의에 대해 조금 더 말하고 싶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확립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무리한 일들이 벌어진 것은 기업 내부에 감독기구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고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이사회를 감독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적절성과 합법성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잘못을 지적하고 그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별도의 감독기구를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사위원 선임에 관한 상법 개정은 이러한 감독기구를 구성하기 위해 제도적인 첫발을 떼는 조치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기업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이처럼 ‘첫발’을 떼더라도, 감사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해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려면,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런데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사회에서 독립된 감독기구를 구성하기 위한 초보적인 상법 개정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것은 재벌 총수들과 최고경영자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두 기구가 그동안 삼성그룹만이 아니라 다른 재벌그룹들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불거진 심각한 지배구조 문제를 제대로 직시할 마음이 없고,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이 두 기구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제한이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하면서 해당 조항이 개정되면 위헌 소송을 불사할 것처럼 나서기까지 한다. 그것은 적은 지분을 갖고서 계열사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재벌 총수의 경영권을 스스로 부정하는 주장일뿐만 아니라, 소유와 경영의 분리, 경영과 감독의 분리라는 현대 기업 경영 체제의 기본 논리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 억지 주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재벌 체제가 국민이 엄청난 규모의 국민저축을 감내하고 국가가 선택과 집중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고 수출 대기업을 육성했기에 성립하였다는 것을 되돌아본다면, 재벌그룹의 경영권 확립과 행사가 공익에 최대한 이바지할 수 있도록 국가의 철저한 감독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것도 널리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감사위원 선임 규정의 개정안에서 보완할 점

감사위원 선임에 관련된 상법 규정 개정안은 여러 가지 형태로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가장 표준적인 개정안은 법무부 안일 것이다. 법무부 안은 감사위원의 분리 선출과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행사 제한을 핵심으로 하고, 감사위원의 수효를 2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무부 안은 이사회에서 독립된 감독기구를 구성하는 첫발을 떼기 위해 최소한의 요건을 새로 규정하는 데 그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그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법무부 안에 대해서 두 가지를 보완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하나는 감사위원의 수효를 훨씬 더 크게 늘리자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노동의 권익을 대변하는 다수의 감사위원을 선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선, 기업 내부에서 기업의 경영권 확립과 행사를 감독할 수 있는 감독기구를 2인 정도로 구성해서는 감독기구의 독립성을 실효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소수의 감독위원이 감독 업무를 수행하면서 받는 엄청난 사회정치적 압력과 심리적 압박에 유의하고 매수와 독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감사위원의 수효는 10인 안팎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0인 안팎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되는 감독기구는 감사위원 상호 간의 역량 결집과 상호견제에 바탕을 둔 내적인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다음,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하되, 그 수효는 1인에 국한해서는 안 되고, 감사위원의 절반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업에서 자본과 노동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기업의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감독기구의 구성 방식이다.

주주들이 이사회를 선출하여 기업 경영을 맡겼을 때, 이사회가 기업 경영을 제대로 해서 주주들의 이익에 최대한 이바지하는가를 감독하기 위해 감독기구를 선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주주들의 당연한 요구이다. 이사회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감독기구가 이사회를 소환하는 권한을 행사할 만큼 그 권한은 막강하여야 한다. 그래야 주주들이 발을 뻗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사회가 기업 경영을 위해 내리는 여러 가지 결정들은 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익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구조조정과 고용조정에 관한 결정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이사회가 기업의 경제정책과 인사정책과 사회정책에 대해서 갖는 경영 전권의 행사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고 도리어 신장하도록 감독할 수 있도록 감독위원회에 노동의 대표자들이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은 기업의 현실에서 비롯되는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이다.

따라서 기업 경영에 관한 전권을 행사하는 이사회가 주주들의 이익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균형 있게 실현할 수 있도록 이사회의 감독기구는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사람들과 노동의 권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동수로 구성되어야 이치에 맞고, 가장 이상적이다. 감사위원의 총수를 홀수로 한다면, 노동자들의 대표와 자본소득자 대표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한 사람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감사위원의 과반수가 반대하지 않는 인사로 선출하면 될 것이다.

필자가 감사위원 선임에 관한 상법 개정에 관련해서 제시한 보완 의견은 이미 오래전에 독일에서 제도화되었다. 노사 공동결정 제도가 그것이다. 경영 이사회와 감독위원회가 이원화된 독일에서는 경영 이사회를 감독하는 감독위원회를 노동과 자본의 대표들로 구성한다는 원칙에 따라 주주총회에서 선출하고 있다.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 제도는 세 가지 형태가 있고, 각각의 제도를 뒷받침하는 기업조직법 혹은 공동결정법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상세하게 설명하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 제도에 관련해서 두 가지를 간략하게 언급하여 그 시사점을 밝히는 데 그친다. 하나는 이 제도가 독일에서 산업 평화를 유지하면서 독일 기업의 생산성을 최적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제도가 가장 모범적으로 구현된 석탄 및 철강 산업 분야의 노사 공동결정 제도에서는 인사정책과 사회정책을 총괄하는 경영 이사가 감독위원회에 속한 노동자 대표들의 과반수가 반대하는 인사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감사위원 선임에 관한 상법 개정안이 적절하게 보완되어 입법화되기를 바란다. 사회단체들도 이에 관해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면 좋을 것이다. 세상의 기업에서 일하다가 복음을 들으려고 오는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도 감사위원 선임에 관한 상법 개정의 의의를 인식하고 교회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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