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신학아키브 뉴스
Kang Won-Don's Social Ethics News

2005/07/11 (20:28) from 220.123.109.206' of 220.123.109.206' Article Number :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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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시대의 사회윤리" 발간
"지구화 시대의 사회윤리" 발간

 이번에 저의 넷째 저술인 "지구화 시대의 사회윤리"(서울: 한울아카데미 2005)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지난 6여년 동안 쓴 논문들을 가다듬어 묶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질정을 바랍니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 위하여 "책머리에" 붙인글을 아래에 게재합니다.

2005년 7월 11일

저자 강원돈


책머리에

 경제의 지구화가 급속히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은 크게 변화되었다. 개발 연대만 해도 국가는 시장을 통제하는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생산, 소비, 무역, 금융 등이 지구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국가는 바로 그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자본의 운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초라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의 논리는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마저 속속들이 지배하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제가 삶을 위해 봉사하는 수단이 되어야지, 삶의 목적으로 자처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도덕주의자로 여겨진다. 생활공동체의 바탕을 이루어 왔던 공감과 연대 의식은 빠른 속도로 증발하고 만 것 같다.

 경제의 지구화는 우리 사회를 양극화하고 있다. 자본 소득은 엄청난 규모로 빠르게 증가하지만, 노동 소득은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비용 절감을 앞세우는 기업은 신규 고용을 줄이고, 고용 조정마저 서슴지 않는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해도, 고용은 늘지 않는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과격하게 진행되면서 노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득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생산과 소비,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괴리가 오늘날처럼 큰 적은 없었다. "고용 없는 성장", "20대 80의 사회"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로 알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 되었다.

 이와 같은 경제의 지구화와 사회의 양극화를 이끌어가는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수익성과 효율성 추구를 제1의 가치로 떠받든다. 오늘 신자유주의는 노동하는 사람들과 자연을 무덤에 파묻겠다는 듯이 기세가 등등하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경제의 지구화 조건 아래서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과정을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사회적이고, 좀 더 생태학적 친화성을 갖는 경제 운영 방식을 구상해 왔다. 오늘의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케인즈주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가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장과 국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정책 기조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경제계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자본의 이해관계와 노동의 이해관계를 지역경제, 국민경제, 세계경제 차원에서 조절하는 경제민주주의이다.

 이 책에서 나는 기독교 사회윤리의 관점에서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 구상과 그 실천 방안들을 다각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비단 기독교 사회윤리의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경제와 윤리가 함께 간다는 것은 계몽된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일 것이다. 경제의 근본 문제가 자원의 희소성 조건 아래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무엇을, 얼마만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따지는 일일진대, 이 근본 문제는 경제적 합리성을 최대한 고려하면서도 기본욕망과 욕심의 구별, 재화와 서비스의 종류의 선택, 생산물 분배, 노동력과 생태계의 경제적 활용 방식, 공익과 사익의 조화 등 경제 활동을 규율하는 원칙을 윤리적으로 검토할 때에야 비로소 그 해법을 얻을 수 있다. 기독교 사회윤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와 신앙이 함께 간다는 것을 주장한다. 사람은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이다. 이 말은 세상에 생명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이 생태계의 안정과 건강을 유지하면서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라는 분부를 받았다는 뜻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졸저 『인간과 노동 - 노동윤리의 신학적 근거』(서울: 민들레책방 2005)에서 체계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6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는 세계를 형성하는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규명한다. 여기서는 책임윤리의 틀에서 윤리적 판단 규준이 갖는 위상과 성격을 밝히면서 기독교 사회윤리가 단지 규범에 대한 추상적 논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제2부는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 구상의 대강을 밝힌다. 여기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시도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경제의 지구화를 규율하는 방안, 사회적으로 분화된 소득 정책에 근거한 국민경제의 거시균형, 기업 차원에서의 공동결정, 일터의 민주화와 인간화 등이 그 대안의 구체적 내용이다.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를 구상할 때, 나는 맑스의 노동가치론 비판이 시장경제 제도를 분석하는 데서 갖는 의미에 주목하고, 특히 그가 자본 II에서 규명한 "재생산 도식"을 해석하여 시장경제의 민주적 개혁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제3부는 노동윤리에 관해서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와 사회적 에큐메니즘(Ecumenism)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한다. 독일에서 발전한 경제민주주의 구상과 그것의 한 구현 형태인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 제도를 역사적으로 살피고, 이와 관련된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의 논의를 검토하는 것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또한 사회적 에큐메니즘에서 노동 문제를 다루어 온 패러다임들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것도 우리의 논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제4부는 근대의 역사적 성과였던 노동사회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고, 노동사회의 대안을 다각적으로 제시한다. 노동사회의 근본적인 대안으로서 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 개념을 "삶을 위한 노동시간"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고, 이에 근거해서 노동시간 정책, 사회 정책, 복지 정책,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 정책, 돈벌이 노동과 삶을 위한 활동의 결합 정책 등을 다룬다. 남의 나라 이야기이지만,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독일 노동운동의 대안을 굳이 소개하는 것은 사회적 연대 의식, 공동결정 제도, 산별노사 교섭제도 등 노동운동이 발달한 독일 사회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대안적 노동세계를 모색하는 데 시민사회가 사회적 투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할 것이다.

 제5부는 생태윤리와 지역경제의 문제를 다룬다. 여기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세계금융체제, 유전자 공학 등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지구온난화 조건에서 나타나는 식량 위기, 지역경제 붕괴 등을 분석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된다.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생태윤리는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친화성을 추구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갖는 지역 경제의 틀에서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신념이다.

 제6부는 지구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군사정치적 패권과 경제 패권의 문제를 분석하고, 이에 대항하는 논리를 밝힌다. 여기서는 한편으로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시도한다. 헌팅턴의 이론은 냉전이데올로기를 방불하게 하는 양분법적 사고방식을 갖고서 미국의 지구적 패권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적 네트워크 경제에 기반을 둔 지구 제국의 등장을 분석한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살피고, 이들이 대항적 지구화의 전략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지구적 시민권, 사회적 임금, 소유질서의 개혁 방안 등의 의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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