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01/01/29 (01:05) from 210.120.173.100' of 210.120.173.100' Article Number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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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들의 평등한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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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28일 주일찬양예배

갈라 3, 16-18
평신도들의 평등한 지위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이 시리즈 설교에서 오늘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신도들의 평등
한 지위이다. 신도들의 평등한 지위는 지식의 많고 적음, 재산의 많고 적음,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 성격의 온화함이나 거칠음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오늘은 그것에 대해 갈라디
아서 3장 26-28절에 근거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치
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낱말이다. 3장 2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시는" 원리를 설명한다.
 의롭게 하여 준다는 말은 우리의 성질이 의로워진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성서에서 의
는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것을 의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불의라고 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다른 사
람들과의 관계도 단절된다. 이렇게 보면 죄를 짓는다는 것과 관계가 파괴된다는 것은 같은
뜻이다. 한 마디로 죄는 곧 불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여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도해서, 죄로 인해 파괴된 하나
님과의 관계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그 일은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 왜냐하면 우
리는 이 세상에서 죄의 종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죄를 누르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에 이끌리
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일은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복종할 때 가능하다. 이것
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권능 아래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죄의 지배로
부터 하나님의 지배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러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왜
냐하면 그 분은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통해 죄의 참람함을 종말론적으로 심판하고 죄의 세
력을 물리쳐 만물의 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바울은 바로 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선포
한다.

2.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
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묶인 자신이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부활하였음을 인식한다는 뜻이
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하는 것을 체험하는 구체적인 사건이
우리 신자들에게는 세례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비로소 교회의 일원이 되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사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기로 결단하고 세례
를 통해 새로운 삶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삶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는 삶이다.
 
3.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에서는 신도들이 서로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것은 부차적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
기는 것이 교회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3.1 바울은 이것을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
별이 없습니다"고 표현했다.
 인종간의 장벽이 높아서 거류민으로 사는 것이 극도로 힘들었던 까마득한 옛날에 바울의
선언은 참으로 획기적이다.
 노예제가 경제의 기본질서가 되어 있고, 신분의 차이가 추상과도 같았던 2천년 전 로마
시대에 바울이 "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선언헌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다.   
 가부장제가 굳어져 있어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당연시되었던 그 시대에 "여자나
남자나 차별이 없다"고 말한 것도 대단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러한 모든 차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
문에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3.2 바울의 가르침을 몇 가지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적용한다면, 지식이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지식은 오늘날 가장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요인이다. "지식사회"에서 지식은 곧 힘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지식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재산은 오늘날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고 해서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교회에서
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신자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사람의 위신도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
다. 그 위신이 있으면 사회 생활을 하는 데에도 유리한 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사회적 위신이 높고 낮음이 중요하지 않다.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함
께 살아가는 일이다.

4.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아직까지도 큰 문제가 되고 있
는 것은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다.
 한국 사회가 가부장제적 성격을 많이 띠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도 그 영향에서 크게 벗
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한 두 세대 전만 해도 여성이 남성과 나란히 걷는 것은 생각하기 어
려운 일이었다. 남성이 부엌을 얼씬거리거나 여성의 일을 거드는 것은 못난이 짓으로 여겨
졌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여전히 불균형이 있기는 하
지만 여성의 지위는 많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주변적인 지위에 밀려 있다. 많은 교회들에서 여
성들은 장로나 목사로 안수를 받지 못한다. 그들이 지도력이 있고 합당한 교육을 충분히 받
았는데도 말이다. 대예배에서 여성들은 교회를 대표해서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강단에 올라
서는 것도 불경한 일로 여겨진다. 지교회에서 여성들은 부엌일이나 청소 등의 일에서 봉사
하는 역할을 맡는데 그치지 교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많
다.
 우리들의 교회에서는 앞으로 이런 점들을 고쳐 나가야 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도들 사이에 "여자와 남자의 차별"이 없다고 못박았다. 예수 그리
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선 사람들 사이에 여전히 성차별이 있다면, 그
것은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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