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01/01/29 (20:53) from 210.120.168.49' of 210.120.168.49' Article Number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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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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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28일 주일대예배 설교

마태복음 5, 1-12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예수의 산상설교는 기독교 신앙과 행위에 대해 황금률과 같은 지위를 갖는다. 산상설교는
옛날부터 기도교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귀의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찍이 마하트마 간디는 산상설교를 읽고 기독교의 가르침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산상설교가 누구에게 전해졌는가를 생각해 보고, 이 설교에 근거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받을 8복의 의미를 살펴보겠다.

1. 예수가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이래 그는 하나님 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외
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외침에 호응해서 몰려들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었
다. 그들 가운데에는 병자들도 많이 있었다. 예수는 그들을 고쳐 주었다.
 산상설교를 한 날에도 예수 주변에는 많은 무리가 모여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것은 거기에 모인 무리들이 그의 말씀을 듣는 청중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가 산
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전통에서 산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 하나님의 계시가 내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산에서 말씀을 선포하셨다는 것은 따
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산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았다"는 것은 그가 선생(rabbi)의 태도를 취했
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의 앞으로 나아가 그의 말씀을 들을 채비를 갖추었
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스승 앞에 제자들이 겸손하게 나아온 것이다.

2. 예수가 그 제자들에게 산상설교를 전할 때 무엇을 염두에 두었을까? 그는 분명히 하나님
의 나라가 현실의 한복판을 향해 돌진해 온다고 믿었다. 예수는 이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
를 맞이할 때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산상설교는 따라서 절박한
성격을 갖고 있다. 예수는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요구되는가
를 말하고자 했다.
 산상설교는 8복 선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마태 5장 3-10절까지 이어지고 있다. 8
복 선언은 어떠한 사람들에게 복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거나 하
나님의 위로를 받거나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2.1 산상설교의 첫째 복은 가난한 사람들을 향하여 선포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자발적인 청빈을 실천하는 사람을 가
리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누가복음의 병행구(6, 20)에는 단순히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로 되어 있다. 오늘의 현실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고대 사회에서 가난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탐욕에서 비롯되는 결과
였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이웃에게서 미투리 한 켤레마저 빼앗고, 미투리 한 켤레 값밖에
안 되는 빚을 빌미로 삼아 이웃을 노예로 삼는 사람들의 몰인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난
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특별한 변호자로 나타난다.
예언자들이 이웃을 곤궁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사람들의 탐욕을 무섭게 질책한 것도 이 때
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곤궁의 한가운데서 몰인정하고 탐욕스러운 이웃에게 어떤 소망도
둘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변호자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분 앞에서 겸손해질 수
밖에 없었다.
 예컨대 스바니아 2장 3절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러한 소망을 잘 대변한다:

"주의 명령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사람들아, 너희는 주를 찾아라.
올바로 살도록 힘쓰고, 겸손하게 살도록 애써라. 주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행여 화를 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바니아의 이 외침은 탐욕과 불의로 가득찬 유대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고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를 잘 말해 준다. 그것은 의로운 삶, 겸손한
삶, 하나님의 구원에 의지하는 삶이다.

2.2 4-6절에 나오는 복의 선언도 가난한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모두 가난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약자들이 보이는 모습
이고 그들이 품고 있는 갈구이다. 지금 불의와 탐욕에 희생된 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받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특별한 약속을 받는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2.3 6절과 10절에 언급된 "의"는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의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구원의 질서이다. 성서 전통에서 의는 "바른
관계"를 뜻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바르게 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바르게 되고,
인간과 여타 피조물의 관계가 바르게 되는 것이 곧 의이다. 이 모든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
될 때 평화가 실현된다. 성서 전통에서 평화는 곧 샬롬이다. 모든 것이 온전한 상태를 지칭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평화의 나라, 정의에 기초한 샬롬이 실현된 나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의와 탐욕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목마르게 기다리고 맛보고 싶은 것은 모든 관
계가 올바르게 맺어져 불의와 탐욕이 없어지고 사람들 사이에 자매들과 형제들의 관계가 이
룩되는 대동의 세계이다. 그것이 곧 정의와 평화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세상에
서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박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박해를 불사하고 의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정의와 평화가
성서 전통에서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에게 속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평화를 이루
는 사람들"이 곧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임을 깨닫는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져 있다.

2.4 나머지 한 가지 복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향한 것이다. 그들은 내면적으로 순수하고
정직해서 그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는 특
권을 얻게 될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은 마음 밭이 좋은 땅과 같은 사람들
이다. 그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열 배, 스무 배, 육십 배의 수확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
와 정반대되는 마음을 가리키라면, 비유컨대, 마음 밭이 가시넝쿨로 가득찬 사람들일 것이
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도 그 말씀이 가시넝쿨로 인해 뿌리를 내리지 못
하고 말라죽고 만다.

3. 오늘 우리에게 산상설교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2천년 전 예수
의 시대와 같지 않다. 오늘날 부를 축적하는 것은 단순히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을 의미하지
만은 않는다. 기술과 지식, 근면을 통해서 사람들은 사회적 기회를 확대하고 자기자신을 개
발하고 명예롭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풍토가 미약하
다. 이것은 바로 잡혀야 한다.
 그런데 부를 가진 사람들은 그 부를 가짐으로써 많은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
아야 한다. 그 책임의식의 출발점은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사람들
임을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 부를 가진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탐심과 이기심을 위해 부를 사
용하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자본 투자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는 비용보다 더
많은 시장이자를 요구하는 관행에 대해 의문을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 부를 가진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제
도와 관련된 측면도 있고, 개개인의 결단과 관련된 측면도 있다. 세제개혁을 통해 소득재분
배를 꾀하는 것이 제도의 측면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삶의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뜻을
모아 기금을 조성하는 것은 개개인의 결단과 관련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경제가 지구
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수효는 나날이 늘어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일자리를 찾더라도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도 크게 줄어든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 개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정의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살고 있
는 사람들의 관계가 하나님의 정의에 기반을 두고 연대와 사회적 평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독교인들은 앞장서야 한다. 나는 이것이 산상설교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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