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01/02/11 (00:23) from 210.120.167.140' of 210.120.167.140' Article Number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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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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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여섯째 주일(2001년 2월 11일)

마태 5,33-37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말라

본문 말씀은 예수의 산상설교 가운데 하나다. 예수가 산에서 행한 설교들이 그렇듯이, 이 말
씀도 아주 짧고 이해하기 쉽다. 이 설교는 "맹세"의 문제를 다룬다. 요점은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나는 이 가르침의 의미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하고 싶다.

1. 오늘의 본문이 산상설교에 속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미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이것은 본문 말씀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음을 뜻한
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는 사람들이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떻게 맞
이해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본문이 속한 마태복음 5장 21-48절은 여섯 가지 반제(反題)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예수는 "성내지 말라", "음욕을 품지 말고, 간음하지 말라", "이혼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
라", "보복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여섯 가지 교훈을 준다.
 여섯 가지 반제들에서 예수는 독특한 화법을 쓴다. 그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옛 사람들이나 모세의 율법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치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모자란
다, 너희는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새롭게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간음에 대해서 예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너희는 '간음하지 말아라'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
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로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서 내버려
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마태 5, 27-29).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가르침에 따라, 간음을 실제로 행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것으로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를 이룬 것인가? 예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간음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여인을 향해 음탕한 마음을 품으면 그것이 곧 간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할 수 없다. 그
마음을 버리려면 얼마나 큰 각오가 필요할까? 음욕을 품게 하는 눈을 빼고 손을 자를 만큼
비장한 각오가 없으면 안 될 것이다.
 예수는 왜 이처럼 무서운 가르침을 주신 것일까? 그 대답은 마태복음 5장 20절에 나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낫지 않
으면 너희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
운 행실보다 더 의로운 행실 -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2. "맹세하지 말라"는 가르침도 "의로운 행실"과 관련된 말씀이다. 여기에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더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예수는 레위기 19장 12절을 구
전 형태로 인용했다. 레위기 19장 12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
여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대로라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면 그
맹세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맹세는 거짓 맹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옛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 네가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께 지켜야 한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는 33절의 말씀에 반영되어 있다. 일단 맹세를 했으면, 그것을 그대
로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생각에도 그만하면 된 것 같은데, 예수는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2.1 예수는 하나님의 이름은커녕 하나님을 연상시키는 어떤 것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
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땅은 하나님의 발을 놓는 발판이기 때문
이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도성을 놓고 맹세하는 관습이 있었던 것 같다. 예수는 그
것도 금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몸을 두고 맹세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한 말
을 지키지 않으면 목을 베어도 좋네", "내가 한 말을 지키지 않으면 손에 장을 지지겠네"
하는 식 말이다. 예수는 그런 맹세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맹세하는 것을 이처럼 엄격하게 금했을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
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말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2 맹세는 마음의 각오를 결연하게 표시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맹세를 하며 말하
는 것을 특별하게 대한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취임식 때 헌법 수호를 맹세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 말의 엄중함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미국에서는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으로 하여
금 성서에 손을 얹고서 맹세를 시킨다. 대통령직을 법에 따라 성심 성의껏 수행하지 않으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서의 권위를 빌어 대통령 선서의 엄중
함을 마음에 아로새기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맹세의 형식을 빌어 결연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도, 그것을 지키려는 마
음이 애초부터 없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전에 온 국민의 빈축을 샀던 "옷 로비 사건" 청문
회에서 옷을 로비 대가로 주고받았다는 혐의를 받은 여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내
세우며 진실을 말할 것처럼 맹세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의 진술은 서로 엇갈렸다. 누구든 한
쪽은 거짓말을 한 셈이다. 진실을 말하겠다고 맹세를 하였지만, 애초부터 진실을 말할 마음
은 없었던 셈이다.
 어떤 정신분석학자에 따르면, 거창한 권위를 내세워 진실을 말한다고 맹세하는 사람은 십
중팔구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천지신명이나 대통령의 권위나 양심을 내세우거나 손
에 장을 지지겠다는 식으로 자기 몸을 내세우며 맹세하는 사람이 있으면, 혹시 거짓말을 하
겠다고 작정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만하다.
 예수도 바로 이 점을 경계했다. 마음의 중심에 진실을 말할 의지가 없고, 말한 것을 그대
로 지킬 의지가 없으면서도 마치 그런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2.3 예수는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고 가르쳤다. 한번 그렇
다고 했으면, 언제까지나 그런 것이지, 번복이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한 말을
도로 먹는 꼴이 되고 만다. 그것을 식언(食言)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번 뱉은 말은 엎지른
물 같아서 다시 주워 담을 방법은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식언을 하며 산다. 한번 말
한 것은 누가 무어라고 하든지 반드시 지킨다는 마음 없이 자기 편한 대로 말하는 데 습관
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천지신명을 두고 마치 결연한 의지를 표시하는 것처
럼 나서니 이보다 더 딱한 일은 없다.
 예수는 이런 태도가 "악에서 나온 것"이라고 규정했다. "예" 할 것을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을 "아니오" 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그 마음이 없는 것 자체가 악이라고
말한 것이다.
 
3. 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데 말은 매우 중요하다. 말은 진실해야 하고, 말을 하는 사람
은 말을 성실하게 지키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점은 언어철학자들도 강조한다. 말의 진
리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진지성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말의 진실성과 말하는 사람의 진
지성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이 둘이 없으면 공동체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거나
해체되고 만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는 무리에게 바로 이 점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 역사
의 한복판으로 도래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고자 하는 교인들의 공동체이다. 이 공
동체에서 교인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말들은 진실해야 한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해야 한
다. 그러려면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마음이 진지한 마음인가를 언제나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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