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01/02/18 (00:59) from 210.120.133.60' of 210.120.133.60' Article Number : 27
Delete Modify 강원돈 (kwdth@chollian.net) Access : 10482 , Lines : 125
온전한 관계를 향해서
Download : 설교0218.hwp (31 Kbytes)
주현후 일곱째 주일

마태 5, 38-48
온전한 관계를 향해서

오늘의 본문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복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나오는 38-42절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43-48절이 그것이다. 이 두 가르침은 산상설교의 여섯 대립명제들 가
운데 마지막 두 반제들이다. 이 두 반제들은 하나님 나라가 동터오는 때에 예수의 뒤를 따
르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이 두 가르침은 "너희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는 교훈으로 귀결된다. 우선 각각의 가르침을
살펴보고, 그 다음 이 가르침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자.

1. "보복하지 말라"는 11절의 가르침은 탈리아 원칙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탈
리아 원칙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보복의 원칙이다. 고대 사회에서 탈리아 원
칙은 무제한한 보복을 제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남의 이를 부러뜨렸다고 목숨까지
빼앗는다면 그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그래서 이를 부러뜨린 자에게 보복을 가하려고
한다면, 그의 이빨을 부러뜨리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이 탈리아 원칙의 본래 의미이다.
 그런데 예수는 탈리아 원칙의 폐지를 요구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따를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는 탈리아 원칙에 따르지 않는 대안적
인 삶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1.1 12절에서 예수는 누군가 나에게 나쁜 일을 하는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모욕을 하는 경우이다. "오른쪽 빰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하는 말씀은 모욕과 관련되어 있다. 오른쪽 뺨을 치기 위해서는 왼손잡이가 아닌 한, 오른손
등으로 상대의 뺨을 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남의 명예를 훼
손시키는, 아주 질이 나쁜 모욕행위였다.
 예수는 이런 행위에 대해 맞상대를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오히려 오른쪽 뺨을 치는 사람
에게 아예 왼쪽 뺨마저 돌려대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모욕행위를 하는 사람의 의도가 아
예 관철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예수가 가르친, 악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1.2 속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벗어주라는 13절의 가르침도 대단한 가르침이다. 그
당시 평범한 유대 사람들은 겉옷과 속옷 두 벌의 옷을 입고 살았다. 겉옷은 그들에게 중요
한 역할을 하였다. 왜냐하면 겉옷은 밤에 잠을 잘 때 이불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평범
한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겉옷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비품이었다.
 율법은 겉옷을 밤에 저당물로 잡는 것을 금지했다. 설사 겉옷을 저당물로 잡았다고 하더
라도, 밤이 되면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것이 율법의 요구였다. 만일 재판정에서 어떤 사람이
속옷을 벗어달라고 요구했다면, 그것은 율법의 요구 때문에 겉옷을 마음대로 저당물로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전제하고서 예수는 속옷을 벗어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벗어주라고
가르쳤다. 그러면 그 사람은 속옷을 벗어달라는 사람 앞에 알몸으로 서 있게 될 것이다. 이
와 같은 대응은 오직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 앞에서 이 세상 사람들의 지나친 요구를 이기
겠다는 각오 없이는 안 될 것이다.

1.3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하는 14절의 가르침은 그 당시 팔레스
틴을 점령했던 로마 군대의 권리를 알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로마 군대는 위수 지역
주민들을 차출해서 부역에 처할 권리가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을 불러서 군수물자를 지고
먼 거리를 가게 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가 주
라고 가르친 것이다.
 부역은 점령자들이 피점령민들에게 가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이런 폭력이 다반사로 행하
여지니까, 그것이 매우 부당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점령자들의 권리처럼 여겨진 것뿐이
다. 예수는 그런 폭력을 악으로 간주했다. 그렇지만 그 악에 대항해서 폭력으로 되갚음을 하
지 말라고 했다(이 점에서 예수는 폭력으로 유대인의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그 당시의 젤
롯 당원들과는 다른 태도를 취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폭력에 대항하면 더 큰
폭력을 불러올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동터오는 하나님 나라 앞에서
폭력 자체가 부정되고, 폭력의 포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예수는 그렇게 가르친 것으로 볼 수
있다.

1.4 42절의 가르침은 필요한 물건의 대여나 생활대부를 다루는 것으로 보이고, 본래 다른 문
맥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의 설교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2.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보복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더 철저하게 만들고 있다. 43
절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는 말씀이 옛날부터 전해진 가르침
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본래 구약성서에는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는 가르침이 명시되어
나오지는 않는다(복수의 시편으로 알려진 시편 139편도 뉘앙스가 다르다). 도리어 구약성서
는 레위기 19장 18절에서처럼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가르침은 따라서 유대교 내부에서 당파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던 후대의 산물일 것이다. 예를 들면, 쿰란 시편 1장 3절 등에는 "모든 빛의 아들들을
사랑하고…, 모든 어둠의 자식들을 미워하라"는 말이 나온다. 예수가 염두에 둔 것은 이러한
태도였을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
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2.1 "박해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삶의 막다른 상황에서 예수를 따르
는 무리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행위일는지 모른다. 예를 들면, 첫 교회의 집사 스테판이 유
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여 주
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일이었다. 네로의 박해시기에 콜로세움에서 관중이 보는 앞에서 맹
수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첫 교회 신자들은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
해 기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한 구체적인 예들이
다.

2.2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는 이유를 몇 가지 들고 있다.

 우선, 45절에서 예수는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
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을 처리하는 까닭은 선과 악
에 대해, 의와 불의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말씀은 사람들의 편
협한 마음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어 선과 악
을 가르고, 의와 불의를 심판하려고 든다.
 예수는 그렇게 하는 일의 위험성을 잘 알았다. 예를 들면, 음행하다 잡혀 온 여인을 유대
인들이 돌로 쳐죽이려고 했을 때, 예수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나와 이
여인을 돌로 쳐라" 하고 준열하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분명
히 사람들의 편협한 마음이나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마음을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 다음, 예수는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존경하는 사람들만을 사랑하는 유치한 행동을
넘어서야 한다고 가르쳤다. 세리도 그런 정도의 일을 할 수 있고, 이방사람들도 그렇게 한다
고 덧붙여 말했다(오늘의 설교에서는 세리와 이방사람들이 이 구절들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예수가 이렇게 덧붙여 말한 까닭은 분
명해 보인다. 하나님 나라가 오고 있음을 알고 그 나라를 맞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전
혀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기를 미워하는 원
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3. "보복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완전할 것"을 가르치는 48절
의 말씀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예수는 "너희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하고 가르친다. 이 구절에서 "완전함"은 완전무결함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할 수 없다. 인간은 실수로부터, 착각으로부터, 불안과 공포로
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 점에서 완전무결한 인간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예수는 "너희도 완전하여라" 하고 말했다. 이 말씀에서 완전하다는 것은 온전하
다는 뜻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온전하다는 것은 성서에서 바른 관계에 선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사람은 온전해 진다. 온전한 사람
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이고, 그 관계를 통해 완전한 평화, 곧 샬롬을
누리는 사람이다.
 이렇게 볼 때, "너희는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라는 48절 상반절의 말
씀이 제대로 이해된다. 하나님은 온전한 분이다. 그 분은 인간과 온 피조물과 바른 관계를
맺었고, 설사 인간과 피조물이 죄의 지배 아래 빠져 그 관계로부터 벗어났어도,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시는 분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다.
 
4.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매우 많을 것이다. 어느 한 가지에만 초점
을 맞추어 그 가르침을 요약하기는 어렵다. 또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가 주어라"
하는 말씀이 암시하는 폭력의 포기를 일반화하는 데에는 문제가 따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질서를 가져온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예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고 그 나라의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새로운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보복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면서 하나님과 이웃
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취할 행동과 관련되어 있다.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