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01/02/25 (23:33) from 164.124.182.193' of 164.124.182.193' Article Number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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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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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 후 여덟째 주일

마태 6,24-34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

오늘의 본문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는 24절의
말씀이 그 하나이고, 근심하지 말라는 25-34절의 말씀이 다른 하나이다. 이 두 가르침은 별
개의 교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25절 첫머리의 접속사 "그러므로"가 두 가르침을 서로
연결시켜 준다. 이것은 재물을 하나님처럼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라는
24절의 교훈이 근심하지 말라는 교훈의 근거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서일과도 이 점을
고려하여 오늘의 본문을 마태복음 6장 24-34절로 주었다.

1.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24절의 가르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재물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다. 재물이 있어야 먹을 것을 사고, 집을 마련하고, 의복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재물은 생활수단이다. 사람들이 일하는 까닭은 생활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것인데, 노동을 해서 얻은 재물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만큼 귀중한 것이라 할만하다. 지혜의
책인 잠언은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이 재물을 모으는 것을 당연시했다. 예를 들면, "의인의
집에는 많은 재물이 쌓이나, 악인의 소득은 고통뿐이다"고 지적한다(잠언 15,6).
 그런데 성서는 재물의 이런 점만 강조하지 않고, 재물의 어두운 측면을 날카롭게 지적하
기도 한다. 재물이 근면과 정직의 산물이 아니고, 약탈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은 성서 시대
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어, 잠언 13장 23절은 "가난한 사람이 경작한 밭에서는 많은
소출이 날 수도 있으나, 불의가 판을 치면 그에게 돌아갈 몫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재물로
인한 불화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예를 들어, 잠언 15장 16절은 "재산이 적어도 주님을 경외
하며 사는 것이, 재산이 많아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성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물에 악마적 성격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재물은 사람에게 권력을 준다. 재물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사서 부릴 수도 있다.
재물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그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이룰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물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 "이만하면 됐다"는 자족(自足)의 생각
은 뒷전에 두고, 경우에 따라서는 재물을 축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축적
의 논리가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물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 못하고, 도리어 사람이 재물의 노예가 되게 한다.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재물을 주인으로 생각하고, 그 주인의 지배 아래 놓인다는 뜻이다.
성서는 사람에게 주인 노릇을 하는 재물을 가리켜 맘몬이라고 한다. 맘몬을 섬기기 시작하
면, 사람은 자신의 참된 주인을 잊어버린다. 참된 주는 하나님 한 분뿐인데, 맘몬이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바람에 하나님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맘몬을
섬기는 사람은 따라서 신이 없는 세상을 산다. 그는 무신론자이다. 성서가 맘몬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하는 까닭은 맘몬이 무신(無神)의 세상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맘몬을 섬기는 것은 그가 자유와 권력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않다. 맘몬은 자유 대신에 노예상태로 이끌어 간다. 맘몬은 권력을 가
져다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많은 경우 악마적 권력이다. 맘몬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복은 매우 깨지기 쉽다.
 누가복음 12장 13-21절은 이에 대해 매우 적절한 비유를 제공한다. 어느 사람이 창고를
더 크게 지어 그가 거둔 소출을 보관하게 했다. 창고 문을 잘 닫아걸고서 그는 "여러 해 동
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하고 다짐을 하
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그 날 밤에 그는 죽었다. 하나님이 그에게서 목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누리려고 했던 행복은 어떤 행복이었을까? 재물이 많아도 그것이
그에게서 목숨을 보장하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많은 재물이 있다한들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재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려던 노력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2. 근심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이런 배경을 알 때 명료하게 이해될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재물은 우리를 근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지는 못한다. 우리를 근심으로부
터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를 섬기는 사람은 이 이
치를 잘 안다. 오늘의 본문 가운데 25-34절은 이 이치를 매우 생생하게 전한다.
 본문은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몸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고 한다. 이 말씀은 물론 생활수단을 얻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새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부터 스스로 일해서 삶을 꾸려가라고 명령하셨다. 무위도식
의 삶은 결코 신앙인의 삶일 수 없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의 목숨과 몸은 누가 주었나? 하
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숨을 허락하고, 우리의 몸을 지으신 분이다. 하나님에 의해 허
락되고 창조된 목숨과 몸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숨을 주관하고 우
리의 몸을 지켜 주는 분이다.
 이를 믿는 사람은 목숨과 몸을 위하여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을 한다고 해서 목숨은 하루
도 연장되지 않는다. 또 목숨과 몸을 위해 근심하는 것은 목숨과 몸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을 의심하는 데서 비롯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
을까 걱정하고, 그 걱정으로 인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등한시하는 사람은 32절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방사람"이지 참된 신앙인이라고 볼 수 없다.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삶이 근심으로부터 벗어난 삶임을 증언하기 위해 두 가
지 비유를 들었다. 공중에 나는 새의 비유와 들에 핀 백합화의 비유다. 공중에 나는 새는 농
사를 짓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새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목숨을 부지하게 한다. 그런데 하
나님은 그 분의 자녀들을 공중에 나는 새보다 더 귀중하게 여긴다.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자명하다. 하나님은 그 분의 자녀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먹게 한다는 것이다.
 들에 핀 백합화는 스스로 길쌈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들꽃이 솔로몬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입게 했다. 이러한 하나님이 그 분의 자녀들에게 어떤 일을 해 주려고 하는가는 너무
나도 자명하다.

3.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목숨과 몸을 위하여 근심할 겨를이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
리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분이 지은 삼라만상에 대한 주권을 행사해서 모든 것이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죄가 이 세상에 침입해 들어와 하나님의 주권 행사를
훼방해 왔지만, 이 죄의 세력은 이미 심판을 받았고,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소탕전뿐이다. 우
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일에 동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예수는 산상설교를 듣는 청중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외쳤다. 이 외
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하나님의 주권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기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우리의 미음과 생각과 행동을
모아야 하고, 그 일을 위해 전력투구하여야 한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이러한 신앙인의 삶에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걱
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을 걱정하는 것은 우리의 목숨과 몸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는 일이고,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을 미리 준비하여 우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하
나님의 의지를 의심하는 일이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걱정이 자라나고, 그 걱정을 덜기 위하여 맘몬을 섬기
기 시작하면, 우리에게는 무신(無神)의 고통만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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