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01/06/30 (21:41) from 211.60.252.136' of 211.60.252.136' Article Number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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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할 것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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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후 넷째 주일
마태 9,36-10,8
추수할 것이 많은데

오늘의 본문 말씀은 제자들의 파견 명령으로 되어 있다. 예수는 산상설교를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병 고치는 일이나 소외된 사람들과 하나되는 일을 몸소 행하셔서 실천의 모범
을 보여 주셨다. 이제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 가르침과 실천의 모범을 마음에 새기며 세상에
나아가 선교 활동을 하도록 촉구하신다.

1. 예수의 주변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예수는 그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 왜냐하면 그
들은 목자 없는 양들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생을 너무 많이 했고, 기가 죽어 있었
다.
 "목자 없는 양들"이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가는 에스겔 34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본
래 "목자"는 구약성서에서 왕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에스겔 34장 1-6절은 폭력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백성을 착취하는 왕을 규탄한다. 34장 2b-3절을 보면, "목자들이란 양떼를 먹이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4b절을 보면, "오히려 너희는 양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는 말이 덧붙여진다.
 에스겔은 이처럼 나쁜 목자들에 의해 억눌리고 잡아먹히는 양떼를 "목자 없는 양떼"라고
규정하고 주께서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에스겔 34장 34장 10절은 참된
목자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말한다.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그 목자들을 대적하여 그들에게 맡겼던 내 양떼를 되찾아
오고, 다시는 그들이 내 양을 치지 못하게 하겠다. 그러면 그 목자들이 다시는 양떼를 잡아
서 자기들의 배나 채우는 일은 못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그들의 입에서 내 양떼를 구출해
내면, 내 양떼가 다시는 그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다."

 예수가 주변에 모인 무리를 "목자 없는 양떼"로 본 것도 에스겔과 비슷한 상황인식에서였
다. 예수 주변의 사람들은 작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난한 소작인들이었고, 강제노역과
무거운 세금에 허리가 휠 정도로 고생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그처럼 고역과 세금으로
시달린 까닭은 정치적 억압구조와 경제적 착취구조 때문이었다. 그 당시 팔레스틴의 정치,
경제의 중심은 예루살렘의 산헤드린과 성전이었다. 산헤드린은 로마 점령세력의 허수아비
정권이었고, 성전은 십일조와 성전세의 수취기관이었다. 정치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로
마 세력의 비호를 받으며 서로 작당을 하고 작은 사람들을 억누르고 그들을 착취했다. 예수
는 이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떼"로 보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2. 예수는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의 우선적인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먼저 참여하여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통치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에스겔
의 말에 기대어 한 마디 덧붙인다면, 하나님은 그 작은 사람들의 참된 목자가 되셔서 그들
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그들을 편히 쉬게 하실 것이다. 참된 목자 하나님
의 통치는 작은 사람들에게 해방과 참된 휴식을 가져다주는 통치이다.
 예수는 작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도록 모으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공동체
를 이루도록 하는 데에는 일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
이 적다"고 한탄하셨다.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해서 기쁨과 나눔과 섬김과 상호배려의 공동
체를 이룰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통치의 비밀을 가르치고, 그들을 이끌
사람들이 적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서 예수는 열 두 제자들을 세웠다. 예수는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더
불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였음에 틀림없다. 9장 38절이
이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이 구절에서 예수는 추수하는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추수할 일꾼을 많이 보내서 알곡들 가운
데 하나도 잃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하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이 기도에는 보다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예수는 자신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파견을 받아 자기에게 와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라고 보고 있다. 그는 그의 동역자들과 더불어 작은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동역자들의 이름은 마태 10장 2b-4절의 명단에 기록되어 있다.

4. 예수는 자신의 동역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면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전권을 나누어
주셨다. 그것은 악한 귀신을 내어쫓는 권능이고, 온갖 질병과 허약함을 고쳐 주는 권능이다.
예수의 동역자들은 예수의 전권을 함께 나누고 예수의 전권 행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악한 귀신은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통치 바깥으로 끌어내는 힘을 말한
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세
력을 지칭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도록 이
끄는 예수에게 악한 귀신을 내어쫓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예수는 악한 귀신을 사람
들에게서 내어쫓음으로써 그 사람들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이끄셨다.
 예수는 또한 작은 사람들을 질병과 허약함으로부터 건져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몸과 마음이 병에 든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 질병의 원인에 맞설 수 없기 때문이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의 병에 시달리는 것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건강한 삶이 불가능한 생활 환경을 그대로 두고 병의 치유와 건
강한 몸과 마음을 말할 수는 없다. 질병과 허약함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멍에
가 되었을 것인가? 이 멍에를 제거함으로써 예수는 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꾸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하셨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이 두 가지 권능을 받았다. 예수의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통치를 방해하는 악한 귀신들과 싸워야 하고, 작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무력하게
하는 질병을 퇴치하여야 한다.

5. 바로 그 일이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며 할 일이다. "하나님 나라
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 것이 예수의 제자들이 전해야 할 메시지이다. 이 세상을 지배하
는 악한 세력의 시간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로서 다스리실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이
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고 그 나라의 의를 추구하는 일에 앞장을 서라는 촉구이다.
 그러나 그 선포는 입으로 읊조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고 외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문자 그대로 지배의 대전환이 도래하고 있음
을 알리는 일이 아닌가? 악마의 지배로부터 하나님의 지배로, 악한 목자의 지배로부터 선한
목자의 지배로 다스림의 주체와 내용이 천지개벽하듯이 바뀌어진다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로서 다스리는 곳에는 강압과 폭력이 없고, 사익을 위해 남을 잡아
먹는 일이 없다. 몸과 마음이 병들 정도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
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그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며 예수께서 제자
들에게 행하라고 명하신 바를 실천하여야 한다. 예수는 마태 10장 8절에서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앓는 사람을 고쳐 주며, 죽은 사람을 살리며, 귀신을 내쫓아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6. 나는 서울시 글짓기 대회에서 1등상을 탄 어느 소년의 시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한번 곰곰히 생
각할 것을 권하고 싶다.

『용욱이 이야기』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구로동에 사는 용욱이예요.
구로 초등학교 3학년이구요.
우리는 벌집에 살아요.
벌집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잘 아시지요?
한 울타리에 55가구가 사는데요.
방문에 1, 2, 3, 4, 5...번호가 써 있어요.
우리 집은 32호예요.
화장실은 동네 공중변소를 쓰는데,
아침에는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해요.
줄을 설 때마다 저는 21호에 사는 순희 보기가 부끄러워서
못 본 척 하거나 참았다가 학교 화장실에 가기도 해요.
우리 식구는 외할머니와 엄마, 여동생 용숙이랑 4식구가 살아요.
우리 방은 할머니 말씀대로 라면 박스만해서
4식구가 다같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엄마는 구로2동에 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셔요.
할머니는 운이 좋아야 한 달에 두 번 정도
취로사업장에 가서 일을 하시고 있어요.
아빠는 청송교도소에 계시는데 엄마는 우리보고 죽었다고 말해요.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해요.
그래서 동회에서 구호양식을 주는데도 도시락 못 싸 가는 날이 더 많아요.
엄마는 술을 많이 먹어서 간이 나쁘다는데도 매일 술 취해서
어린애 마냥 엉엉 우시길 잘하고 우리를 보고
"이 애물 단지들아! 왜 태어났니...같이 죽어버리자" 고
하실 때가 많아요.
지난 4월달 부활절날 제가 엄마 때문에 회개하면서 운 것
예수님은 보셨죠.
저는 예수님이 제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 못했거든요.
저는 죄가 통 없는 사람인줄만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날은 제가 죄인인 것을 알았어요.
저는 친구들이 우리 엄마보고 "술집 작부"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구요.
매일 술 먹고 주정하면서 다같이 죽자고 하는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아시죠.
지난 부활절날 저는 "엄마 미워했던 거 용서해주세요"라고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모습으로
"용욱아 내가 너를 용서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만 와락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그날 교회에서 찐계란 두 개를 부활절 선물로 주시길래 집에 갖고 와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생전 처음으로 전도를 했어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구요.
몸이 아파서 누워계시던 엄마는 화를 내시면서
"흥, 구원만 받아서 사냐"
하시면서 "집주인이 전세금 50만원에
월세 3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구원만 말고 50만원만 주시면
네가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해도 믿겠다" 하시지 않겠어요.
저는 엄마가 예수님을 믿겠다는 말이 신이 나서 기도한 거
예수님은 아시지요?
학교 갔다 집에 올 때도 몰래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했잖아요.
근데 마침 어린이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있다면서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뽑아서 보내 주셨어요.
저는 청송에 계신 아버지와 서초동에서 꽃가게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던 때 얘기를 그리워하면서 불행한 지금의 상황을 썼거든요.
청송에 계신 아버지도 어린이날에는 그때를 분명히 그리워하시고
계실테니 엄마도 술 취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살아주면 좋겠다고 썼어요.
예수님, 그 날 제가 1등 상을 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시지요?
그 날 엄마는 너무 몸이 아파서 술도 못 드시고 울지도 못하셨어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 오셨어요.
글짓기의 심사위원장을 맡으신 노 할아버지 동화작가 선생님이 물어 물어 저희
집에 찾아오신 거예요.
대접할게 하나도 없다고 할머니는 급히 동네 구멍가게에 가셔서
사이다 한 병을 사오셨어요.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똑똑한 아들을 두었으니
힘을 내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엄마는 눈물만 줄줄 흘리면서 엄마가 일하는 술집에 내려가시면
약주라도 한잔 대접하겠다고 하니까 그 할아버지는 자신이 지으신
동화책 다섯 권을 놓고 돌아가셨어요.
저는 밤늦게까지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동화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책갈피에서 흰봉투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펴보니 생전 처음 보는 수표가 아니겠어요.
엄마에게 보여 드렸더니 엄마도 깜짝 놀라시며 "세상에 이럴수가...이렇게 고마운
분이 계시다니" 말씀하시다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저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께서 가져 오셨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주신 거예요"
라고 말하는데, 엄마도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얘 용욱아 예수님이 구원만 주신 것이 아니라 50만원도 주셨구나"
라고 우시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할머니도 우시고 저도 감사의 눈물이 나왔어요.
동생 용숙이도 괜히 따라 울면서
"오빠, 그럼 우리 안 쫓겨나구 여기서 계속 사는거야?" 말했어요.
너무나 신기한 일이 주일날 또 벌어졌어요.
엄마가 주일날 교회에 가겠다고 화장을 엷게 하시고 나선 것이예요.
대예배에 가신 엄마가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솔방울만해 가지고
집에 오셨더라구요.
나는 엄마가 우셨길래 또 같이 죽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겁을 먹고 있는데
"용욱아, 그 할아버지한테 빨리 편지 써.
엄마가 죽지 않고 열심히 벌어서 주신 돈을 꼭 갚아 드린다고 말이야"
라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엄마가 저렇게 변하신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고마우신 예수님! 참 좋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신 수표는 제가 커서 꼭 갚을께요.
그러니까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동화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사시도록 예수님이 돌봐주세요.
이것만은 꼭 약속해 주세요.
예수님! 너무나 좋으신 예수님!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예수님을 용욱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 용욱이 드림

<이 글은 서울 글짓기대회에서 1등한 어린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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