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03/04/19 (22:05) from 211.192.202.217' of 211.192.202.217' Article Number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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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영광(2003년도 부활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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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2003년 4월 20일)

고난과 영광

출애 15:1-11
누가 24:13-35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권세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분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부활하신 분이 다시 오실 때에는 세상의 모든 악한 권세가 제거되어 정의와 평화의 새 세상이 세워질 것을 믿고 희망을 다지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세계에는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힘을 가진 세력이 하고 싶어하고 또 실행하는 모든 일이 정의인 양 인정되는 세계가 다시 왔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무수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굴종시키는 패권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부활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부활은 힘을 앞세운 세력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바로 그 죽임의 세력을 이기고 일어섰음을 알리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자를 살림으로써 세상을 지배하는 죽임의 세력이 마지막 말을 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고, 죽임의 세력을 심판했습니다. 성서는 이를 여러 가지로 증언합니다.

 1. 오늘의 구약 본문도 그 증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은 모세의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히브리 노예들을 이끌고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난 다음에, 그 일을 주관하신 하나님을 찬양한 노래입니다. 그 하나님은 놀라운 권능을 가진 분이요, 거룩한 분이요, 찬양을 받으실 분입니다. 이것은 공허한 노래 말이 아닙니다. 그 노래는 모세와 히브리 노예들이 하나님의 해방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한 생생한 증언입니다.
 파라오의 권력 아래서 비참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던 히브리 노예들은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조상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최소한의 휴식시간도 그들에게는 거부되었습니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은 파라오의 권력 아래서 절망한 사람들을 결코 내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모세를 파견하여 파라오에게서 히브리노예들을 인도해 내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의 노래가 묘사하고 있는 홍해의 사건은 세상을 지배하는 파라오의 권력을 홍해에 수장시킨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건입니다. 파라오의 권력을 상징하는 군대와 전차들은 홍해에 수장되었고, 하나님은 파라오의 권력보다 더 큰 권능을 가진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실증하였습니다. 파라오로서는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을 위한 하나님으로서 파라오의 압제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에게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출애굽 사건은 성서의 핵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된 정의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은 무서운 권력 아래서 절망하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새로운 삶을 불러일으켜 주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부활시키신 하나님입니다.

 2. 오늘 봉독한 신약 말씀은 예수가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가를 증언할 뿐만 아니라, 그 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새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음을 전해줍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먼저 예수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에 의해 로마 총독의 사형 판결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증언했습니다. 이 증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증언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세력이 무엇인가를 명백히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세력은 성전세력과 산헤드린, 그리고 로마 제국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던 온 세상을 지배한 로마 제국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을 죽인 장본인이었고, 예루살렘 지배세력은 그 일에 빌미를 제공하고 동조하였습니다. 이 무서운 반신적인 세력들 앞에서 사람들은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무서운 폭력이 두려워 도망치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분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 달린 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이 증언한 바와 같이, 십자가에 달린 분이 무덤에 묻힌 뒤 사흘 째 되는 날에 여인들이 그 무덤을 찾아갔을 때 예수의 시신은 없었습니다. 그곳에 와 있던 천사들은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분명히 증언하였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악한 세력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자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온 세상을 지배하는 죽임의 세력을 심판하셨습니다. 부활은 죽임의 세력을 무력하게 만든 하나님의 위대한 해방 사건입니다. 설사 죽임의 세력이 여전히 발호하고 위력적인 모습을 보일지라도, 십자가에 달린 분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은 마침내 죽임의 세력을 세상에서 몰아내고 진정 새로운 세계를 세우실 것입니다.
 바로 이 믿음 때문에 우리 신자들은 부활절을 맞이할 때마다 위대한 희망을 끊임없이 다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절망과 어둠뿐이지만, 그 절망과 어둠을 뚫고 비쳐오는 희망의 빛을 우리 신자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분의 부활을 통해 봅니다.

 3. 우리는 폭력에 눌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역사의 어둠을 불사르고 새로운 희망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수많은 예들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어제 우리나라가 기념한 4·19 혁명도 그런 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활절과 4·19 혁명기념일이 서로 일치하거나 근접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사건을 서로 연결해서 생각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유당 정권 아래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압살되고 부정부패가 극심해지고 시민들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 자유당 독재에 용감히 항거하고 일어난 사람들은 청년 학생들을 위시한 우리 사회의 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서운 경무대의 권력과 그 하수인으로 전락하였던 경찰의 폭력 앞에서 숨죽이며 살았던 사람들, 마치 죽어있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폭력에 항거하며 일어났습니다. 물론 그 항거는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일시에 이룩하지는 못했습니다. 4·19혁명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수많은 암흑의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그 암흑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작은 사람들의 항거를 기억하며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세계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합니다. 죽임의 세력이 극에 달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너무나도 암담하고 깜깜합니다. 그러나 이 암흑과 절망을 가져오는 세력이 극성을 부리면 부릴수록 십자가에 달린 분의 부활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신자들은 더 큰 용기와 희망을 갖고, 암흑과 절망의 세력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고, 그것에 맞서 싸울 각오를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정하고 심판하신 죽임의 세력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하시는 그 일에 우리 신자들은 동참할 뿐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넘어선 곳에서 우리는 영광을 맛볼 것입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다음에 비로소 부활하셔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영광을 미리 맛보신 것처럼, 우리 또한 고난을 넘어 영광의 나라로 나아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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