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11/02/17 (14:06) from 210.91.50.188' of 210.91.50.188' Article Number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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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 제자들의 훈련과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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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주일 설교

마태 10, 5-15
열 두 제자들의 훈련과 파송

 신학교육주일은 1년에 한 주일을 따로 정하여 교단의 목사후보생을 훈련시켜 배출하는 신학교를 위하여 기도하고, 신학교의 발전을 위해 특별 헌금을 하는 주일입니다. 보통 2월 셋째 주일을 신학교육주일로 지킵니다마는 교회 사정에 따라 2월 둘째 주나 넷째 주에 신학교육주일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신학교육주일을 맞이하여 마태복음 10장 5-15절을 본문으로 선택하여 “열 두 제자들의 훈련과 파송”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언하고자 합니다.

 1. 본문 말씀이 속한 마태복음 10장은 크게 보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열 두 제자들을 선택하여 훈련을 시키는 일을 전하여 주는 1-4절의 말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열 두 제자들을 파송하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기록된 5-42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5-15절은 길게 이어진 파송 연설의 첫 부분에 해당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우리에게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한 뒤에 어떤 훈련을 시켰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마태복음 10장 1절에 있습니다. 이를 보면,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과 질병과 약함을 치유하는 권능을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을 이해하려면 이 두 가지 권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1 먼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예수님께도 그렇지만 제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공적인 활동을 시작하시며 선포한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는데, 동터오는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고 그 나라에 참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에서 귀신은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는 훼방꾼입니다. 그 귀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감추고 그 거룩한 뜻에 거스르기 때문에 더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반대말이 곧 “더러움”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귀신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도깨비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도깨비라면 허무맹랑한 것이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더러운 귀신은 사탄을 가리키는데, 사탄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제 마음대로 지배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정의에 등을 돌리게 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깨뜨려서 사람들 사이에 정의와 평화가 깃들 수 없게 만듭니다. 그것은 이기심과 탐욕과 교만과 책임전가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권력 숭배나 맘몬 숭배 같은 우상숭배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의 정의와 평화를 깨뜨리고 생명을 파괴하는 힘들과 구조들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탄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자연에 속한 피조물들의 관계들도 송두리째 파괴하여 땅을 메마르게 하고 그 위에 깃든 생명체들이 야위거나 씨가 마르게 만드는 힘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더러운 귀신을 식별하고 그것을 세상에서 쫓아낼 수 있는 권능을 갖추도록 제자들을 훈련시킨 것입니다. 오직 그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바른 통치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권능이 갖는 의미를 가장 잘 전하여 주는 이야기는 마가복음 5장 1-20절에 기록된 거라사의 귀신들린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거리사의 공동묘지에서 살던 귀신들린 남자는 예수를 보고 대뜸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말은 하나님과 맺어야 할 관계가 파괴되어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그 말은 한 것은 거라사의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에게 깃들어 있는 더러운 귀신이었습니다. 그 귀신이 그 남자의 온 존재를 움켜쥐고 좌지우지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사람들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도 망가뜨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 속에서 말하는 귀신을 향하여 “네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습니다. 그 귀신이 “군대”라고 답하자, 예수님은 그 귀신에게 명하여 근처의 돼지 떼 속에 들어가 낭떠러지로 달려가서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는 것은 예수 시대에 갈릴래아에 주둔한 로마 군단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갈릴래아의 로마 군단은 갈릴래아와 유대 지방에 대한 로마 황제의 지배를 뒷받침하는 폭력이었고, 그 지역 주민들에게 살아있는 권력이었으며,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거라사의 귀신들린 남자의 이야기는 로마 군단의 폭력에 주눅이 들고 그 폭력의 지배 아래 송두리째 묶여 있는 갈릴래아와 유다 민중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군대”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그들이 동터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의 귀신축출은 따라서 예수 시대의 민중으로 하여금 지배의 대전환에 참여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사탄의 지배로부터 하나님의 지배로, 로마 황제의 지배로부터 하나님의 통치로 옮겨갈 수 있는 길을 여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1.2 그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이 질병과 약함을 치유하는 권능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시키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질병과 약함은 육체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심리적이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이, 몸과 무관하게 마음만 건강할 수 없고, 마음과 무관하게 몸만 펄펄 건강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온전한 상태에 있는 것을 가리켜 삶의 복지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사람들이 온전한 몸과 마음을 갖고서 복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피는 능력을 갖추도록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제자 훈련의 내용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3 이러한 권능을 갖도록 훈련시키기에 앞서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똑바로 향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들,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임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키며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을 뚜렷하게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시켰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는 능력과 백성의 질병과 약함을 치유하는 능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2. 바로 이와 같은 정체성과 권능을 갖추게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은 참으로 엄숙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물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동안 그 일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거처와 먹을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놓고 보면, 그것은 그 사람들이 개인적인 덕성과 영적 능력을 함양하여 욕망의 포로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엄숙한 요청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영접하는 공동체를 놓고 보면, 그것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영접하여 그 사람의 영적인 지도를 따르고 그 사람의 생활을 뒷받침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권면입니다. 따라서 이 파송의 말씀은 오늘의 실천신학적 관점에서 보아도 목사후보생의 개인적, 영적 훈련의 지침이 될 뿐만 아니라 교역자와 회중의 교역관계를 규율하는 가르침으로서 여전히 참고할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3. 저는 오늘 교단 신학교에서 목사후보생을 기르기 위해 실시하는 신학교육도 예수님의 제자 훈련을 그 원형적인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교단의 현실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펼치던 원공동체의 현실과 다르고, 교회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 교단 나름의 전통을 형성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교단은 칼빈의 종교개혁 전통과 장로회 정치원리를 이어받고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과 연대하는 전통을 세워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 교단의 전통과 특색을 살리면서 예수님의 제자 훈련을 모범으로 삼아 신학교육을 알차게 펼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신학교육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교한 수단을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단 신학교의 목사후보생 신학교육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서와 개혁교회 전통으로부터 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목사후보생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늘의 세계에서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진리 의식을 명료하게 표현하고 행위의 가능성을 심사숙고하여 제시할 수 있도록 목사후보생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의 영적, 문화적, 물질적, 정치적 문제들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문제의 해결을 책임적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목사후보생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넷째는 오늘의 세계에서 교회의 실천을 촉진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목사후보생의 개인적, 영적, 전문적 능력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4. 저는 신학교육을 마치고 세상과 교회 현장을 향해 나아가는 목사후보생들에게 예수의 파송 설교를 전하곤 합니다. 파송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가 닥쳐 올 것을 예고하면서 박해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진리를 증언하면 이와 다른 견해를 갖는 사람들이 그들을 붙잡아 채찍질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 관헌들에게 넘겨주어 박해를 받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와 같은 종교적 박해와 정치적 박해 가운데서 제자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오로지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털 한 올까지 셀 만큼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대신하여 성령이 말하도록 준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증언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입니다. 제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증언하는데 사람들이 그를 부인하는 일이 얼마나 흔합니까? 이런 일을 빤히 내다본 예수님은 그렇게 부인하기만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했습니다. 속이 좁아 보이는 말씀 같지만, 이 말씀은 세상에서 예수님과 그분이 하고자 하는 일을 증언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그런 것처럼, 오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일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서 더러운 귀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일하고 몸과 마음이 병들고 약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에 전력투구할 목사후보생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세상에서 받을 갖가지 고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신학교육은 세상에서 받을 박해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담대하게 일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용기 있게 전할 수 있도록 목사후보생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영적인 능력을 키우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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