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11/11/02 (19:40) from 210.91.50.188' of 210.91.50.188' Article Number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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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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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 채플 설교
2011년 11월 2일(수) 11:30

마태복음 10장 34-39절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오늘 우리나라 신학계에서도 그렇지만,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서도 정의와 평화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2013년 10월에 부산에서 열리는 제10차 WCC 총회는 “생명의 하느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주제를 내걸고 정의와 평화 속에서 만물이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전 세계 교회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정의, 평화, 생명은 이 시대의 문제를 극복하고 새 시대를 여는 사회윤리적 구상의 핵심 개념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충만한 생명을 누리는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의와 평화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놓고서는 일치된 견해가 있기 보다는 의견이 분분할 따름입니다.
 사실 제10차 WCC 총회의 주제는 1983년 뱅쿠버에서 열렸던 제6차 WCC 총회의 주제를 조금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뱅쿠버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였고, 전 세계 교회를 향해 생명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생명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구조들과 세력들 편에 설 것인가를 엄숙하게 묻고 이 질문에 대해 신앙고백적인 응답을 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뱅쿠버 총회는 그 당시 세계에서 생명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구조들과 세력들로서 여섯 가지를 꼽았습니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생태계 파괴, 군국주의, 계급차별, 성차별, 인종차별 등이 그것입니다. WCC 총회는 생명을 살리는 통전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공의회 과정에 전 세계 교회를 초청하고 이 공의회 과정의 주제를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으로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저 유명한 JPIC 공의회 과정이 시작되었고, 1990년 서울에서 JPIC 세계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런데 JPIC 공의회 과정과 IPIC 서울대회에서 WCC와 전 세계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통전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의견이 갈렸기 때문입니다. 북미와 유럽의 많은 나라 교회들은 JPIC 공의회 과정에서 평화와 생태계 보전의 이슈를 강조했고, 세계를 유기적 전체로 인식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에 반해 제3세계 여러 나라 교회들은 정의의 이슈를 부각시켰고, 불의한 세계에서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과 계약을 맺는 하느님의 해방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이 두 가지 흐름은 1975년 나이로비에서 모인 제5차 WCC 총회 이래로 제1세계 교회와 제3세계 교회들이 각각 대변하였는데, 한 마디로 세계를 유기적 통일체로 보면서 평화와 조화를 강조하는 그룹이 세계를 갈등과 대립의 현장으로 보면서 정의와 해방을 강조하는 그룹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WCC의 노선 대립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제10차 WCC 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평화 이슈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그룹과 정의 이슈를 부각시키는 그룹이 주도권을 주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에큐메니칼 논쟁을 들여다보면서 정의를 전제하지 않은 평화에 대한 모든 담론은 잘못된 것이라는 테제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저는 JPIC 공의회 과정에서 평화의 이슈를 부각시킨 독일 교회의 논의를 점검한 적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전략 핵무기뿐만 실전용 중성자탄까지 대규모로 배치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인들이 생존을 위해평화 이슈를 부각시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들의 논의는 “정의 문제를 뺀 평화론”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독일의 지배적인 여론은 동서냉전 구도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서 평화를 강조하였지만, 그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전제로서 정의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고, 동서냉전 구도에 의해 좀처럼 부각되지 않았던 북반부 국가들과 남반구 국가들 사이에 가로놓인 불의한 억압과 수탈 관계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평화론이 진정성을 담고 있겠습니까? “정의가 없는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서 어떻게 제대로 된 평화론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서구 학계에서 평화론의 이정표를 설정하였다고 알려져 있는 요한 갈퉁은 “적극적 평화” 개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갈퉁이 말하는 “적극적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로 규정하는 “소극적 평화” 개념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고안된 개념입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른바 “평화” 시기에도 사람들은 갖가지 갈등과 대립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서 좀처럼 “평화”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평화는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폭력이 난무하도록 만드는 구조들과 요인들을 제거할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갈퉁은 이러한 평화를 “적극적 평화”라고 명명하고, “적극적 평화”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법치를 확립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인간의 자기실현의 기회를 보장하는 일련의 역동적 과정을 통하여 실현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들 사이의 평화도 군사적 조치나 군비확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기보다는 각 나라가 보다 낫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고 그러한 나라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쳐서 달성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입니다.

 갈퉁의 “적극적 평화” 개념은 오늘의 세계에서 매우 진보적인 발상을 담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평화를 말하기 이전에 정의를 말해야 하며, 오늘의 세계에서 그런 것처럼 부가 한곳에 집중되고 가난이 널리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정의를 묻는 자리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의 자리에서, 민중의 관점을 갖고서, 정의를 생각하여야 참 정의를 인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민중신학자 심원 안병무는 일찍이 “참 정의는 바로 이렇게 억울한 착취와 압박을 당하는 민중이 그런 사회구조에서 해방되어 인권을 회복하고 저들의 절규가 수용되는 민주화가 수립될 때에만 비로소 성립”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직 그러한 정의가 수립될 때에만 “평화의 터전”이 마련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압축해서 “민중의 해방과 자주성이 보장되지 않고는 정의가 성립될 수 없다. 그러한 정의가 수립되지 않은 채 평화를 내세우는 것은 기존체제를 지키겠다는 의미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의가 평화의 전제라는 생각은 성서의 예언자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샬롬’을 약속한다는 것을 역설했습니다.(렘 26:6; 렘 29:11; 겔 34:25-37:26). 그러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진노가 있는 한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점도 부각시켰습니다.(렘 12:12). 하느님이 진노하는 까닭은 정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평화를 입으로 외친다 해도 정의 위에 서지 않은 평화는 결코 평화가 아닙니다. 정의를 가로막는 것은 인간의 불의이기 때문에,(사 57:21) 불의에 맞서 투쟁하며 정의를 세우는 고단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참 평화는 정의와 병행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 48:18).
 이러한 예언자 전통에서 볼 때, 약자들을 폭력으로 내리누르며 강자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질서를 참된 평화라 할 수 없습니다. 참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정의를 수립하여야 합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이 아시리아나 바빌론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 다른 나라의 폭력을 끌어들이는 데 단호하게 반대하고 먼저 공동체 안에 정의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예언자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예수는 당대 현실을 규정하는 프레임이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하느님의 통치를 날카롭게 대립시켰습니다. 예수는 로마 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갈릴래아에 가서 하느님의 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외치고 그 외침에 호응하여 모여든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로마 군단은 팍스 로마나의 군사적 토대였습니다. 팍스 로마나는 결코 정의 위에 세워진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약자를 무력으로 억압하여 평온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의 자유와 재산을 약탈하고 강자의 특권을 공고히 하는 불의한 체제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팍스 로마나의 한복판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음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정의롭게 다스리는 날이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그 날이 오면,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과 세력이 종말을 고하고 하느님의 직접 통치가 실현될 것입니다. 그 선포에 호응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지배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지배로 옮겨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지배의 전환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기존질서에 안주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동터오는 새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일입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바로 이 점에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도래의 선포는 “갈릴리의 민중에게 최대의 돌파구를 열어주는 일이며 동시에 로마-헤롯-예루살렘 세력권에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이 판단은 정곡을 찔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폭력과 불의에 근거한 세상 통치를 거부하고 정의에 근거한 하느님의 통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지배하는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기득권 구조는 “칼”로써 상징되는 민중의 투쟁과 심판에 의해 붕괴되어야 하고, 정의에 근거한 평화로 대체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 “칼”은 사람들이 안주하고 있는 구조를 깨뜨리는 장치입니다. 본문에서 그 구조는 가족으로 상정되고 있습니다. 가족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의 번식과 생존을 위한 기구이고, 창세기 1장 28절은 하느님이 인류에게 삶을 꾸려나가도록 허락한 제도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족은 하느님의 축복의 질서에 속해 있고, 그런 만큼 가족을 해체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마치 가족의 해체를 위해 온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것은 예수가 가족의 필요성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가족주의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석기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부장주의를 당연한 듯이 여기고 가부장의 지배를 마치 하느님이 정한 질서인 양 받아들이지만, 예수는 당대의 가부장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아이들을 존중하라고 한 예수의 말씀이나 이혼을 아예 금지하는 예수의 가르침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가족주의에 포획되어 그것에 얽매이게 되면,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노예화하고, 비천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 그 어떤 불의와 폭력에도 순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터인데, 예수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 나라 운동에 골몰하던 예수에게 가족들이 찾아오자, 예수는 “누가 내 형제며 자매냐?” 하고 반문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형제요 자매라고 말함으로써 가족주의의 통념을 허물어뜨렸습니다. 가족주의에 안주하지 말고 지배의 대전환에 동참하여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예수는 분명히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가 주려고 하는 “칼”은 단순히 가족주의를 “단칼”에 베어내면 그 쓸모가 다하는 “칼”에 불과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칼”은 오히려 오늘의 세계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든 불공평한 기득권을 겨냥하는 “칼”입니다. 그러한 불공평한 기득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평화를 말한다면, 그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연호하고, 평화를 위해 안보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안보를 위해 기존 질서를 변경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불온시할 때, 우리는 그 평화가 거짓 평화라고 말해야 하고, 그 거짓 평화의 구호가 감추고 있는 불의한 기득권 질서를 베어내기 위해 “한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참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려면 그 전에 투쟁을 통해서 모든 기득권의 구조를 붕괴시켜야 할 것입니다. 분열을 무릅쓰고서라도 시비를 가리는 심판을 앞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평화의 실현은 오직 정의의 실현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평화에 앞서서 정의를 말해야 한다면, 정의를 제대로 인식하는 자리를 확인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나는 그 자리가 민중의 자리라고 확신합니다. 민중의 자리에 서면,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바르지 않은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민중신학은 이를 가리켜 민중의 인식론적 특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가 갈릴래아에 가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임박했다고 선포했을 때 그 선포에 응한 사람들은 그 당시의 민중들, 곧 오클로스였습니다. 죄인과 창기, 병자들, 공동체에서 배제된 사람들, 거덜난 농민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로마 제국이 허락한 권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들, 종교권력을 향유했던 사제들, 율법 해석을 통해 유대 사회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통제하는 데 앞장섰던 바리사이파 사람들, 지대는 소작인들에게서 징수하고 세금은 소작인들에게 떠넘겼던 지주들 -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에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주변에 몰려들었던 무리들은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그 나라의 현실을 길게 설명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그들이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잘 알고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왜냐하면 민중은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가 이집트에서 탈출한 공동체가 간직했던 해방의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기억에 근거하여 히브리인들이 세운 원시 이스라엘에 역사적 근거를 두고 있고, 폭력과 독점에서 벗어나 섬김과 사귐과 나눔에 근거한 공동체의 비전을 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현실이 오클로스의 자리에서 온전히 드러났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민중의 자리에 설 때 오늘의 세계에서 정의가 무엇인가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민중의 자리에서 비로소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고, 그 정의에 근거한 평화가 어떤 공동체 구조를 필요로 하는가를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의와 평화의 관계에 대한 민중신학적 관점과 제안이 제10차 WCC 총회의 주제를 명확하게 가다듬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한신의 신학공동체가 제10차 WCC 총회의 주제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가고 정의로운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 방략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라며, 그러한 노력을 통하여 한신 신학의 빛나는 전통을 에큐메니칼 운동의 맥락에서 창조적으로 계승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 교회가 정의에 근거한 평화 속에서 충만한 생명을 누리는 세상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고서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경험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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