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설교
Kang Won-Don's Sermons

2019/10/16 (22:01) from 218.146.8.38' of 218.146.8.38' Article Number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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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적인 지배를 넘어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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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7일
신학대학원 생활관 경건회

성서: 삼상 8,10-18; 갈라 6,13-15; 마가 10,41-44
설교: 자의적인 지배를 넘어서서

 10월 17일이 어떤 날인가를 알고 있는 분들이 이 자리에 알마나 많은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날은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특별한 날입니다. 지금부터 47년 전인 1972년 바로 이 날 그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10월 유신을 선언하였습니다. 국회는 해산되었습니다. 3공화국 헌법에 국회해산권이 규정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국회해산은 당연히 헌법에 반하는 행위였습니다. 정당 및 정치활동은 중지되었습니다. 헌법의 일부조항은 정지되었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어, 전쟁법에 의해 치안이 유지되는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언론, 출판, 방송은 검열되었고, 옥내외 집회는 금지되었습니다. 국무회의는 비상국무회의로 전환되었고, 입법부의 기능을 수행하였습니다.
 비상국무회의가 마련한 유신헌법은 11월 21일 국민투표에 회부되어 투표율 91.9%, 찬성 91.5%로 확정되어 12월 27일에 공포되었습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 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규정했고,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고, 대통령에게 헌법의 효력까지도 일시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이 국회 해산권과 모든 법관에 대한 임명권을 갖도록 하여 대통령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위에 초월적으로 군림하도록 하였고,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는 동시에 연임 제한을 아예 철폐하여 종신 집권이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유신헌법이 공표되기도 전인 12월 15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가 99.9%의 찬성률을 기록하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로써 모든 권력을 거머쥔 대통령의 자의적 통치가 얼마든지 가능한 독재체제가 확립된 것입니다. 이 정치체제가 악명 높은 유신체제입니다. 유신체제가 확립되면서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사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민주주의의 암흑 시기에 여러분들의 선배들은 민주화 인권 운동에 헌신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장 없이 체포되고, 구금되고, 고문을 당하고, 재판에 회부되고, 징역을 살고, 학교에서 제적되었습니다. 고난의 한가운데 있다는 말이 실감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서 우리가 읽었던 성서 말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의 말씀들과 예언자들의 말씀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한 예수가 남긴 말씀들이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한국 헌정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가 시작되었던 10월 17일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상 8장 10-18절, 갈라디아서 5장 13-15절, 마가복음 10장 41-44절도 그러한 말씀들에 속합니다.

 사무엘상 8장 10-18절의 말씀은 출애굽 전승의 맥락에서 정치신학의 핵심 사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의 말씀은 이집트 땅에 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파라오 체제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 그 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적인 공동체를 추구하고 그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기본 메시지로 삼고 있습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파라오 체제는 강제노역과 공납체제에 바탕을 둔 강력한 관료체제와 상비군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파라오는 태양 아래 가장 강력한 전제군주로서 자의적 통치를 할 수 있는 권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로부터 공납물을 거침없이 받아내었고, 그것을 저장하기 위해 거대한 창고들을 짓게 하고, 히브리인들을 동원하여 강제노역에 부쳤습니다. 그 체제 아래서 고난당하던 히브리인들이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외침을 야훼께서 들으셨습니다, 그분은 모세를 시켜 히브리인들을 파라오의 손아귀로부터 건져내시고, 마침내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히브리인들이 권력의 독점과 물질의 독점에서 벗어난 지파공동체를 건설하도록 하셨습니다. 지파에 속한 사람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에 관련된 일들을 함께 의논하고 처리했습니다. 상비군이나 관료체제는 아예 없었고, 외적이 쳐들어오면 의용군을 형성하여 맞서 싸우고, 전쟁이 끝나면 의용군은 곧바로 해산하였습니다. 사사기에 기록된 원시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던 것입니다.
 원시 이스라엘이 성립되어 약 200년 정도 지속되었을 때, 사람들은 치안과 국방을 위해 왕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예언자 사무엘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왕의 옹립이 결국 가나안 땅에서 원시 이스라엘을 해체하고 파라오 체제를 구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백성은 왕에게 곡물과 짐승의 십일조를 공납물로 바치고, 남자들은 군대에 동원되고, 여자들은 시녀로 차출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고, 공납체제에 바탕을 두고 상비군과 관료체제를 구축한 왕이 공고한 권력을 구축하고 그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백성들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경고하고 나서 사무엘은 한 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그 때 백성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다고 해도 야훼는 그 부르짖음을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이라고!
 사무엘은 파라오 체제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버리고 다시 파라오 체제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꾸짖고, 권력을 독점하는 통치자의 자의적인 지배와 수탈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자 사무엘이 전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한 예수의 외침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 뒤에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총독의 주재와 로마 군단의 주둔을 통해 로마 황제의 지배가 가장 뚜렷하게 확립되어 있었던 갈릴래아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박하였으니 더 이상 로마 황제의 지배에 굴종하는 삶을 살지 말고 삶의 방향을 180도 전환하여 하나님의 동터오는 통치에 합류하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이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내용에 대해 불가지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저는 예수가 동터오는 하나님의 통치가 무엇인가를 아주 분명하게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통치질서를 뿌리로부터 부정하고 타파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은 공납체제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공납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세 기둥은 세금, 지대, 그리고 강제노동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한복판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 도래에 관한 선포에 호응하여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겠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한 자니 내가 너희에게 메워주는 멍에는 가볍다.”(마태 11,28-30) 예수의 말씀에 언급되어 있는 ‘수고’는 강제노동을 뜻하고, ‘무거운 짐’은 세금과 지대를 가리켰습니다.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세금과 지대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약속한 쉼, 안식, sabbath는 강제노동과 세금과 지대로부터 해방된 삶을 뜻했습니다. 그것은 로마제국을 지탱하는 세 기둥을 철거함으로써만 가능한 삶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분명하게 천명한 다음에 예수는 그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라고. 그것은 권력을 갖고서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세상의 강포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세상의 권력자와는 달리 스스로 낮아져서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섬기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예수는 권력을 가진 자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사람들 사이에 사귐과 섬김을 촉진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삶의 실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함께 읽은 마가복음 10장 41-44절을 음미할 때가 되었습니다. 마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메시아로서 통치를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었기에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제자들 사이에 예수의 통치를 보좌할 권력 요직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세배대오의 두 아들들 사이의 벌어진 언쟁은 예수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그 언쟁을 듣고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통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힘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는 스스로 낮아져서 서로 섬겨라.” 이 예수의 말씀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보다 더 생생합니다. 예수는 굳이 “세상의 통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실제로 세상의 통치자가 아닌데도 세상의 통치자임을 참칭한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통치자를 자처하는 자들이 폭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사람들을 억누르고 그들에게 속한 것을 완력으로 빼앗는다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자의적 지배와 수탈을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단 한 마디 말씀으로 정리했습니다.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스스로 낮아져서 사람들을 섬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다른 사람을 그 빈자리에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진정한 사귐이 가능할 것입니다. 타자를 환대하고 사귀려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세상의 통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자의적 지배에 대항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예수가 제시하는 정치의 원리입니다.

 그러한 정치가 과연 가능할까? 그러한 정치가 가능한 조건들을 놓고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결론만 딱 집어서 말씀드린다면, 저는 그러한 정치가 당연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민중이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고 자의적 지배를 일삼는 권력 엘리트들에 맞서서 힘을 조직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의 영역에서 자의적 지배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공화주의적 질서를 수립하고 그 질서를 수호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공화주의적 질서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실현했다고 주장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나라의 빛에서 그 성취를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비판적으로 점검한다면, 예수가 로마제국의 한복판에서 제시했던 정치의 비전이 점차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오늘 우리가 읽은 바울의 말씀이 큰 울림을 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하면, 피차 멸망하고 말 터이니, 조심하십시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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